[미디어펜=김소정 기자]청와대가 일본정부의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 방침에 정면 대응에 나선 양상이다. 4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 조치인 ‘개별 수출심사’를 발동한 것에 대해 ‘정치적 보복’으로 규정하고 이 조치를 철회할 수 있도록 외교적 대응을 해나가기로 했다.
청와대는 현재 WTO 제소를 포함해 일본의 조치가 부당하고, 자유무역주의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주요국가에 설명하는 등 국제적 여론을 환기시킬 계획이다.
일단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국제법 위반이라며 경제 맞대응에 나선 것이지만 WTO 제소는 실효성이 떨어지고, 당장 경제계가 받을 타격을 줄이는 방안으로도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본정부의 조치는 WTO 규정에도 없기 때문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아무 문제없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의 조치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수출 절차를 간소화시켜놓은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것이다. 없던 규제를 만들어서 우리나라에 수출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화이트국가로서의 혜택을 더 이상 안 주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보통 WTO에 제소하고 나서 결론이 나오기까지 빨라도 2년이 걸린다. 만약 한쪽이 상소를 한다면 3~5년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 기간동안 우리기업이 받는 피해는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경제 맞대응뿐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나 외교부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연결된 각 단위에서 매일같이 심도 깊은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5일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제 NSC와 경제부총리 차원의 대응이 있었고, (이와 별도로) 기업의 목소리를 듣고 어려운 점에 대한 대책이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구체적으로 논의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또 “주일대사가 한일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한다는 얘기를 했다는 것을 오늘 아침기사로 봤다”고 덧붙였다.
최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삼성전자 최고위 경영진을 만났고, 김 실장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대그룹 총수들과 이르면 이날부터 만나기로 하는 등 이번 사안과 관련한 업계와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말한 것이다.
아울러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가 4일 도쿄신문을 찾아 스가누마 겐고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일관계 악화와 일본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양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한일 정상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일도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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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청와대 |
하지만 당초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정부의 초기대처가 미흡해 대응할 시기를 놓친데다 지금은 아베 총리가 전면에 나선 상황에서도 정부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금 공은 한국쪽에 있다”며 전면에 나서 대응하고 있다. 전날 NHK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베 총리는 “한일은 청구권협정에 따라 종지부를 찍었다. 서로가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세계평화와 안정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이날 한일 정상회담 추진을 포함해 정부 각 단위에서 노력하고 있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대통령의 말씀 혹은 지시,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지금 드릴 얘기는 없다”고 말해 정작 문재인 대통령은 이 사안과 관련해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의 침묵은 일본의 보복조치를 참의원선거를 앞둔 아베정권의 정치 수단으로 평가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일 과거사 문제가 외교 문제로 비화되더니 경제 보복을 초래한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마치 재난 대책을 세울 때처럼 모든 수단을 가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보수야당은 문재인정부가 북한 문제만큼 한일관계에 공을 들였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줄곧 지적해왔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문재인정권은 한국의 주력산업 반도체를 겨냥한 일본의 강력한 무역통상 보복조치에 수수방관 중이다. 한일관계에서 실익 우선과 현실주의적 접근이 아닌, 이념적 목표 달성에만 매진하면서 역사상 최악의 국면을 맞이한 결과가 가혹하다”고 했다.
또 전 대변인은 “경제성장률 2.7% 중 절반에 가까운 1.3%를 책임지던 반도체 산업마저 정부가 자초한 일본의 무역규제로 무너져 버린다면 먹거리 성장산업 실종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찌 되는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전 의원의 지적처럼 문재인정부가 한일관계 문제를 이념과 감정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최근까지도 여당 쪽에서 “문재인정부가 아베정권과는 기싸움을 좀 벌여야 한다”는 말이 쉽게 들리는 것을 볼 때 문 대통령이 ‘국익’을 우선한 대일외교전략을 구사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진단도 나와있다. 문재인정부가 이제라도 원칙과 명분을 따지지 말고 미국측에 중재 요청이라도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