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지금으로선 가장 좋은 해결책이란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9일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아베정권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정부의 비상대책을 주문했다.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아베정권의 경제 보복 조치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서 갈수록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미래 먹거리인 화학 분야를 타깃으로 전기차 배터리, 수소전기차 첨단 소재까지 정조준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아베 정권은 이런 조치의 근거로 ‘한국이 대북제재를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서슴지않고 있다.
이에 대해 호사카 교수는 “아베정권이 한국을 주적으로 삼으려하고 있다”면서 “지금 아베정권이 한국을 전력을 다해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으니 우리도 전력을 다해 모든 것을 가동해서 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인이지만 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꾼 그는 “아베정권이 지금 한국에 대해 취하는 조치를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2012년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청구권을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렸을 때부터 일본의 보복 조치는 이미 준비됐다고 지적했다.
2012년 5월 대법원은 강제징용자 8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서울고등법원은 이듬해인 2013년 7월 “강제징용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그해 일본언론에 “삼성도 하루만에 괴멸할 것”이라는 섬뜩한 기사가 실렸다. 2013년 11월14일 일본의 유력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은 ‘한국의 급소를 찌른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 금융계 인사의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을 강제 징수당하면 대항 조치는 금융제재밖에 없다”는 주장을 실었다.
당시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놓고 취임 초기부터 일본정부와 갈등을 겪었던 박근혜정부는 결국 양승태 사법부에서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사법농단으로 몰리면서 대법원장 등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렀지만 이에 대해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최근 “외교적·정책적 방법으로 배상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정부에 벌어준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호사카 교수는 “한국에서 첫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나오고 위안부 문제로 갈등을 겼으면서 당시 일본정부가 거세게 항의했고, 박근혜정부는 결국 대법원 판결을 미뤘다”며 “보수정권에서 벌어질 일이 미뤄져서 지금 문재인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정부 때 만약 최종 판결이 나왔더라면 아베정권이 지금과 똑같은 보복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
|
▲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연합뉴스 |
박근혜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서는 최종 대법원 판결을 연기시켰고, 위안부 문제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단행하는 방법을 썼지만 문재인정부 들어 모든 게 뒤집혔다. 이에 대해 호사카 교수는 “보수정권도 판결을 미루거나 일본에 굴복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었던 것을 알았던 것이다.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것”이라며 “지금 문제는 한국정부가 아니라 아베정권이란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사카 교수는 “문재인정부가 진보정권이어서 아베정권이 가혹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집권 6년차를 맞는 아베 총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시점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며 "그래서 아베정권은 2018년 10월 강제징용 최종 판결이 나오자마자 지금의 보복 조치에 착수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호사카 교수의 말은 한마디로 한국 대기업의 생사를 한손에 쥐고 흔들 수출규제라는 칼을 빼든 아베정권이 한국과 안보공조마저 깨뜨리려는 상황을 엄중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아베정권의 경제보복을 놓고 한국 내에서 보수와 진보로 갈라 서로 책임을 전가해 싸울 겨를이 없다고 주문했다.
호사카 교수는 인터뷰 처음부터 “지금은 가장 좋은 해결책 한가지를 찾을 때가 아니라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대응할 때”라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외교적 해결은 물론 다음 선거에서 아베정권을 굴복시키는 방법까지 포함해야 하며, 지자체 단위의 일본산 불매운동이나 문재인정부의 일본산 금수조치까지도 계획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한일정상회담을 포함한 양국간 협의를 제안하는 정공법을 구사하면서 ‘워싱턴 카드’를 사용하는 제3국의 중재를 적극 동원해야 한다는 것. 동시에 국제사회에 이번 문제에 있어서 한국쪽의 정당성을 알리는 홍보활동과 함께 우리기업 차원에서 '소재의 국산화'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호사카 교수는 “한국정부가 징용피해에 책임이 있는 한국과 일본의 기업으로 공동재단을 만들자고 제안했던 것을 다시 논리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일본이 거부했지만 한국정부가 잘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 그는 “일본 법원에서도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판결이 여럿 있다. 바로 이 점을 들어 정당성을 갖춘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한편으로 아베정권에 보복조치를 철회하라고 꾸준히 요구하면서 다음 선거에서 아베정권을 패배시킬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음 참의원선거까지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한국국민들이 일본산 불매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인다면 일본국민도 아베정권이 실패한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호사카 교수는 “이런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도 아베정권이 응하지 않을 때 한국정부는 일본제품을 금수 조치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앞서 아베 총리가 ‘공은 한국에 있다’라고 말한 것은 한국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번복하고, 일본 주장을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아베정권은 한국이 굴복할 때까지 보복조치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강대강 조치가 없으면 한국경제를 다 죽이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