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약자가 강자 이기는 지혜 일깨워주는 보고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27) -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대한 일침, 풍자와 해학 속에 넘치는 겸손한 삶의 지혜 아이소포스(BC 620?~ BC 560)의『이솝우화』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편집자주]  

   
▲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영어로 이솝(Aesop)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의 그리스 이름은 아이소포스(Aisopos)다. 그가 쓴 ‘이솝 우화(寓話)’는 세상의 모든 우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졌고, 나라와 시대를 뛰어 넘어 가장 폭넓은 계층에게 사랑받은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 된” 이솝우화를 청소년기에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하지만 이솝 우화가 주는 메시지가 청소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은 아니다. 사실 탐욕과 사악함에 찌든 어른을 위한 우화다. 이솝우화에는 수많은 위험에 노출된 사회의 타락한 현실을 이겨나갈 지혜가 가득하니 정작 깊이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동심을 잃어버린 성인들이다.

이솝 우화는 그리스 서사시처럼 박진감이 넘치거나 신화처럼 흥미진진한 긴 스토리는 아니다. 글의 호흡이 짧아 읽기 편하다. 의인화된 동물과 식물, 또는 인간들의 짤막한 에피소드 속에 잔잔한 삶의 교훈이 담겨있다. 이솝우화는 이솝의 창작 글이 대부분이지만 전해오는 신화와 속담, 일화, 설화와 겹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다 보니 이솝우화에는 수많은 이본(異本)이 있다. 역자 천병희 선생은 기독교 윤리가 지배하던 서양에서 이솝우화가 품고 있는 냉혹한 현실세계의 모습들이 불편하여 첨삭을 많이 한 까닭이라고 설명한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꾸미기 위해 원전과 달리 멋대로 덧붙인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어 원전을 완역한 이 책은 그동안 시대적 관점에 따라 자의적으로 가감되었던 일그러진 이솝 우화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솝의 저작 의도를 정확히 복원함으로써 우화의 교훈을 생동감 있게 맛볼 수 있도록 인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책에 실린 358편의 이야기 가운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들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생소한 우화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흥미를 돋운다. 아이소포스는 독자들을 이성적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보고 듣고 겪을 수 있는 이야기로 전개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이솝우화 중 몇 가지를 감상해 보자. 먼저 ‘여우와 나무꾼’이다. 겉으로 착한 척하면서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의 우화다. 현실에서도 이런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지 않은가? 언행이 불일치한 인간들에 대한 일침이다.

여우가 사냥꾼을 피해 달아나다가 나무꾼을 보고 숨겨달라고 간청했다. 나무꾼은 여우에게 자기 오두막에 들어가 숨으라고 했다. 잠시 뒤 사냥꾼들이 나타나 여우가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사냥꾼은 말로는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면서도 손짓으로는 여우가 숨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사냥꾼들은 그의 손짓에는 주목하지 않고 그의 말만 믿고 떠나갔다. 사냥꾼들이 멀어진 것을 보고 여우가 나오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길을 떠났다. 자기를 구해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않는다고 나무꾼이 나무라자 여우가 말했다. “당신의 손짓과 성격이 말과 일치했더라면 나도 당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겠지요.”

   
‘여우와 나무꾼’ 우화의 일러스트레이션, Harrison Weir(1824~1906) 1867년 작

‘말과 당나귀’라는 우화도 있다. 강자와 약자 사이의 상생의 지혜를 들려주는 듯하다. 요즘 실업과 경기침체 등 어려운 경제상황에 빠져있는 우리 사회가 귀 기울여야 할 지혜가 아닐까?

어떤 사람에게 말과 당나귀가 있었다. 하루는 길을 가면서 당나귀가 말에게 말했다. ”내가 살기를 바란다면 제발 내 짐을 조금만이라도 덜어주게나!“ 말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당나귀가 과로로 쓰러져 죽었다.

그러자 주인은 말에게 모든 것을 지우더니 당나귀의 가죽까지 얹었다. 말이 탄식하며 말했다. ”아아, 참으로 비참하구나, 이게 대체 무슨 고생이람! 작은 짐도 지지 않으려다가 짐을 이렇게 몽땅 지게 되었으니. 게다가 가죽까지!”

한 가지 우화를 더 소개한다. ‘족제비와 아프로디테’ 이야기다. 사악한 본성을 가진 사람의 성질이 외모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다는 교훈을 확인시켜 준다.

족제비가 미남 청년에게 반해 자기를 여인으로 바꿔달라고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했다. 여신은 족제비의 연정을 어여삐 여겨 족제비를 잘생긴 소녀로 바꿔놓았다. 청년은 그녀를 보고 반해서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들이 신방에서 쉬고 있을 때, 아프로디테는 그녀가 몸이 바뀌면서 성질도 바뀌었는지 알고 싶어 방 한 가운데에 쥐 한 마리를 풀어놓았다. 지금의 처지를 잊어버린 족제비는 침대에서 일어나 쥐를 잡아먹으려고 뒤쫓았다. 그러자 그것이 못마땅해서 여신은 그녀를 이전 모습으로 도로 바꾸어 버렸다.

   
‘족제비와 아프로디테’ 우화의 일러스트레이션, Author Arthur Rackham(1867~1939) 1912년 작

아이소포스는 왜 이런 우화들을 썼을까? 그는 기원전 6세기 경 사람으로 알려진다. 트라케 출신의 전쟁포로였고, 사모스 사람의 노예로 일하다 아폴론 신전 사제들의 탐욕을 고발한 까닭에 그곳 사람들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는 장년기의 활동을 대부분 노예 상태로 보낸 것 같다.

그는 우화들을 통해 자신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가 자주 동식물을 의인화한 이야기의 형식을 빌은 이유도 현실적 위험을 피하려는 지혜였을 것 같다.

그는 불합리와 모순, 탐욕과 거짓, 전쟁과 살육이 끊이지 않았던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그 가운데 시민들이 생존해 나가기 위한 삶의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주고자 한 것 같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상당 부분 강자가 약자를 강탈하기 위한 위선과 모략의 이야기나, 위기에 처한 약자가 지혜로운 말과 처신으로 강자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들이다.

사악한 사람들에게 속지 않는 기지(機智)를 제공하기도 하고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결말을 통해 바른 삶을 인도하는 글도 상당히 많다. 또 헛된 욕망이나 지나친 탐욕으로 파멸에 이른 사례들과 자신의 본성이나 역량을 넘어 분수를 모르는 행동으로 화를 초래한 경우도 보여준다. 하나하나 인간의 삶에 대한 아이소포스의 깊은 통찰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다.

아이소포스는 인간의 사악함, 무모한 욕망, 행운에 기대는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있다. 자연의 만물과 인간이 똑같은 감성과 이성을 갖고 희로애락을 함께 누리는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우월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인간의 겸손한 태도를 가다듬게 하는 듯싶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은 근엄한 도덕 교사처럼 굴지 않아 좋다. 시종 일관 풍자와 해학을 잃지 않는 미덕이 이솝우화를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세태를 풍자하고 일침을 주는 글쓰기의 풍부한 소재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다. 2천 5백년이 넘도록 숱한 사람들에게 그의 우화가 자주 인용되는 이유다.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kipeceo@gmail.com) 

   
☞추천도서 : 『이솝 우화』, 아이소포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3), 3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