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갑질, 7월 법 시행 이후 되레 늘어
"괴롭힘 방지법, 명확성의 원칙에 정면 위배"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첫 날인 지난 7월 16일 경기도 수원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민원실에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에서 한 민원인이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지 100일이 넘었지만 중소기업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은 오히려 늘었고, 사측 역시 만족하지 않아 해당 법의 실효성과 모호성 논란이 제기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애로사항을 조사하는 사이트 직장갑질119는 지난 24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100일차를 맞아 통계자료를 냈다.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개정해 만들어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상사의 부당한 지시나 모욕 등 소위 '갑질'을 회사에 신고하면 회사는 피해자가 요구하는대로 근무지 변경과 유급휴가 등을 허용해야 하고, 가해자는 징계토록 돼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 제109조는 "제36조·제43조·제44조·제44조의2·제46조·제56조·제65조·제72조 또는 제76조의3제6항을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직장 내 갑질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총 1주일간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직장 내 괴롭힘이 가장 심한 항목은 전체 평균지수는 30.5로 나타났다. 이 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직장 내 괴롭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 외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거나 일부분만 지급한다'(45)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 '채용정보나 실제와 다르거나 면접에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43.5)'등으로 나타났다.

   
▲ 직장갑질119가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총 1주일간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이후 중소기업에서의 괴롭힘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자료=직장갑질119


사업장별로는 중소기업이 31.4, 대기업 30.6, 공공부문 26점으로 나타났다. 이 중 대기업과 공공부문은 전년 대비 각각 6.9, 9.6점이 하락해 개선된 반면 대한민국 전체 사업장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선 되레 3점이 올라 직장 내 괴롭힘이 심화됐음을 알 수 있다.

   
▲ 직장갑질119가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총 1주일간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민간 영세사업장의 89.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자료=직장갑질119

아울러 법 시행 이후 39.2%는 괴롭힘이 줄었다고 답했으나, 여전히 평균 60.8%는 그대로라고 응답했다. 이 중 공공기관 종사자의 경우 무려 49.3%가 직장 내 괴롭힘이 감소했다고 했으나, 중소기업의 경우 36.7%만이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고 답변했다. 게다가 민간 영세사업장의 89.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괴롭힘 방지법의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되는 이유다.

한편 회사측에서도 괴롭힘 방지법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 2월 근로기준법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괴롭힘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에 담긴 사례가 50여개에 불과해 현장에 적용하기엔 다소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직장 내 괴롭힘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핵심은 적정 범위 내 업무 연관성을 따져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부하 직원의 미흡한 업무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상사가 보완할 것을 반복해서 요구해 부하 직원이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의도된 괴롭힘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용노동행정기관의 유권해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일선에선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은 경우의 수가 생겨나일각에선 '걸면 걸리는' 괴롭힘 방지법이 도리어 기업을 괴롭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례로 대신증권은 '고객포트폴리오 제안 경진대회'를 개최했다가 직장 내 괴롭힘 법 위반으로 노동조합측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자산관리사업단 주도로 열린 PT 대회가 결국 영업성과가 좋지 않은 일부 직원에게 사실상 '망신주기'로 인식되기 때문에 근로자에게 고통을 준 것이란 주장이다.

이와 관련, 대신증권 관계자는 "성과 좋은 직원들도 대회 명단에 포함돼있었고, 본부·직급·영업기간별 비중을 고려해 선정한 것"이라며 노조가 무리하게 괴롭힘 방지법을 주장하는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아울러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업무상 지시인 PT 대회 개최를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법학과 교수는 "입법 목표는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며 "괴롭힘 방지법은 그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말했다. 이어 "괴롭힘이란 무엇인지 가치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법 적용의 범위가 너무 넓어지면 필연적으로 '이현령 비현령' 논란을 수반해 마녀사냥이나 여론몰이로 비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가 사적 영역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반법치주의이자 전체주의"라고 꼬집었다. 또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며 "겉만 번지르르하지, 사회주의로 가는 지름길인 괴롭힘 방지법을 그대로 둘 경우 국가주의나 파시즘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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