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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 소월리 출토 목간 [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경북 경산에서 6세기에 신라인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세 기초문서인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이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화랑문화재연구원(이하 연구원)은 경산 소월리 유적 발굴조사 수혈(竪穴·구덩이) 유구(遺構·건물의 자취)에서 삼면에 얼굴 모양을 표현한 토기와 함께 신라 토지 관련 목간을 발굴했다고 9일 밝혔다.
길이가 74.2㎝이며, 육면에 글씨를 적었는데, 사람 얼굴 모양 토기는 제작 시기가 5세기 전반으로 판단됐는데, 목간은 서체나 내용을 근거로 이보다 한 세기 늦은 6세기 유물로 짐작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 6일 1차 판독 작업을 진행해 글자 94자를 읽었다.
전경효 연구소 주무관은 "6세기에 경산 인근 토지 현황을 적은 토지관리 문서 목간일 가능성이 크다"며 "현대의 업무수첩과 같은 예비문서나 기초문서로, 이후에 정식 문서를 작성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목간치고는 상당히 길고, 나무를 일부러 칼로 깎아서 육면을 만든 것 같다"며 "신라 변두리 지역에서 목간을 수습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목간 A면에는 '십부감말곡답칠(?)□제상일결 구미곡삼결 제하십부'(?負甘末谷畓七(?)□堤上一結 仇彌谷三結 堤下?負)라는 글자가 있으며, 다른 면에도 숫자와 논 답(畓), 밭 전(田) 자 등이 있는데, 연구소는 답(畓), 골 곡(谷), 방죽 제(堤) 글자와 조세 부과 단위인 결(結), 부(負) 자에 주목했다.
전 주무관은 "곡은 일정한 집단 혹은 마을을 지칭하는 글자이며, 둑을 쌓아 논을 조성했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제방을 축조하고, 그 주변에 논을 만든 뒤, 이에 대해 세금을 수취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답(畓), 결(結), 부(負) 자는 목간 작성 시기를 추측하는 데에도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고유 한자인 답(畓)은 561년에 건립한 국보 제33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 처음 나온다고 알려졌는데, 경산 목간도 6세기 중엽 전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결부법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인 7세기에 사용했다고 전해졌으나, 경산 목간으로 인해 시행 시기를 올려 잡을 수 있게 됐다고 연구소는 강조했는데, 결과 부는 토지 면적 단위로, 154㎡인 부를 100개 합치면 한 결이 된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6세기에 신라 중앙에서 나온 지방 행정관이 생산력을 높이고 세금 수취를 추진하기 위해 쓴 것 같은데, 신라 지방행정 체계를 파악하는 데 귀중한 사료"라고 평했다.
주 교수는 "조세 내용은 특별세 성격일 확률이 높다"며 "6세기 유물인 영천 청제비나 대구 무술명 오작비가 인근에서 나온 것처럼, 경산서도 비석 발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산 소월리 유적은 금호강 지류인 청통천 주변 평야가 보이는 언덕에 있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가 확인됐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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