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과 비례 중시한 건축기법...철학과 자연과학의 지혜 고스란히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31) - 철학과 자연과학의 지혜를 담아야 탁월한 건축물
비투르비우스(BC 1세기 경)의『건축십서』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내용을 입력하세요. [편집자주]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io, ?~?)는 기원전 1세기경의 로마의 최고의 건축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로마 시대 건축술과 이론을 집대성한 『건축십서(De Architectura 10권)』를 남겼다. 이 책은 그리스와 로마 고전 연구가 활발하던 르네상스기인 1415년경에 재발견되어 오랫동안 유럽의 건축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건축에 관한 유일한 저술로 희귀한 고전이다. 특히 건축의 여러 영역에 대해 전문적 내용을 상술하고 있어 오늘날까지 건축학도에게 성서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애독서이다.

비트루비우스는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공공건축에서 제국의 위엄을 나타내려고 애를 쓰고 계신 모습”에 감사해 하며, 향후 더 많은 위대한 공공건축과 개인용 건축물을 만드는 데 참조할 수 있도록 이 책을 건축교본으로 헌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모두 10권으로 이루어졌다. 내용의 영역이 방대하다. 건축의 기본 원칙, 건축 부지, 건축 자재, 건축 구조물의 구성 비례 및 주요 구조물의 제작 방식, 다양한 목적의 건축물의 구성과 축조 계획, 일반 주택의 공간 구성 및 구조, 건축 자재와 채색 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나아가 건축과 간접적으로 연관되는 물의 특성에 대한 기술, 행성과 성좌(星座)의 현상과 각종 건축 및 전쟁 등에 필요한 기계 장비 및 기구 등에 대한 소개도 담고 있다.

비트루비우스는 제일 먼저 건축가의 교양으로써 기하학, 광학, 수학을 배울 것을 권장한다. 나아가 자연과학과 철학을 배울 것을 요구하고 음악 또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철학을 통해 사욕을 버려야 훌륭한 건축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자연법칙을 알아야 건축 과정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도(水導)의 유입이나 구배(句配)의 문제도 자연과학의 법칙을 알아야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비트루비우스는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 완전할 수는 없지만, 다방면에 걸쳐 어느 정도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로마가 최고의 건축술을 보일 수 있었던 저력을 느끼게 한다. 요즘은 건축가의 경우 건축 분야에 대한 전문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인문학적, 자연과학적 소양이 부족한 상태에서 전문기능인으로 흐르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로마 시대에 바람직한 건축가의 상으로 제시되었던 그 취지를 되새겨볼 만하다.

로마의 공공건축은 그리스 신전 건축 양식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 같다. 기본적으로 그리스 신전의 기둥 양식(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과 기둥 간격의 비례의 원칙 등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그리스 신전의 기둥 배치 등에 적용된 수학적 비례를 본받고 있다. 가장 균형이 잘 이루어진 아름다운 상태의 균제 비례(심메트리, symmetry)의 원칙이 추구되었다. 이는 비례에 맞는 인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원리의 확장에 다름 아니다.

   
▲ 도리아식의 기둥과 비례의 원칙 등이 적용된 수니온 곶의 포세이돈 신전, BC 444년에 건축되었다.
   
▲ 이오니아식 기둥 양식,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남아 있는 신전 건축 유물이다. BC 5~4세기 경 작으로 추정된다.

   
▲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 남아 있는 코린트식 기둥 양식의 건축물, 1세기 작으로 추정된다.


건축물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기둥의 높이, 굵기, 간격, 주두(柱頭)의 장식과 비례 등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신전의 건축 양식은 모시는 신의 성격에 맞게 구성되었다. 제우스의 신전은 도리아식을 아프로디테의 신전은 코린트식을 선호하는 식이다.

고대 원형 극장의 건축 시 특별한 음향 장치 없이 건축 기법만으로 섬세한 음향과 잔향(殘響) 효과가 발생하도록 시설했던 점에서 그리스와 로마 건축 기술의 탁월성을 알 수 있다. 비트루비우스는 극장의 음향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무대(scaena)와 오케스트라(ochestra), 계단식 관람석, 극장 제일 상단의 열주랑(列柱廊);colonnade)의 시설 및 배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요즘에도 그리스와 로마 원형 극장의 유적지를 방문하면, 관광가이드들이 오케스트라 부지의 정중앙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박수를 치면서 극장 내에 퍼지는 음향과 공명을 입증해 보이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원형 극장의 우수한 건축 기술을 입증해 보이려는 의도에서다.

2012년 7월에 아테네 방문 시 아크로폴리스 아래에서 본 아티쿠스 극장이 인상적이다. BC 2세기에 건립되었고,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로마의 원형극장은 그리스 원형극장 양식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여 변형 발전시킨 대표적인 예의 하나다. 청중석 일부를 복원 개조하여 지금도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남서쪽 기슭에 위치한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건축십서』는 로마인들이 선호했던 건축 양식이나 부재, 신전, 공공건물 및 일반 주택의 형태를 파악하게 해준다. 또한 기계 장비가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인력과 동물의 동력을 이용하여 건축 기자재를 운반하는 방식과 자연의 식물, 석재, 조개 등에서 각종 고급 안료를 얻어내던 제조방법까지 소개하고 있다.

『건축십서』에 기술된 로마 건축 현황과 이론을 볼 때 당대에 만들어낸 건축물과 건축기술의 탁월성이 얼마나 뛰어났던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나아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 유적들을 보다 의미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준다. 현대 유럽의 도시들을 구성하고 있는 아름다운 석조 건축물들은 모두 균제 비례의 원리에 의해 축조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기술의 계승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864년에 완공된 아테네 대학교 본부 건물이다. 덴마크 건축가 테오필 한센이 건축한 신고전주의 건축의 걸작 가운데 하나다.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 식 기둥 양식을 계승하고 현대식 4각 기둥을 혼합한 특이한 작품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술은 유럽 각지로 전파되었고, 중세의 여러 나라의 왕궁과 성곽, 성당, 교량, 공공건물의 건축에 그대로 전수되어 갔다. 오늘날 우리가 찬탄하는 유럽의 많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어느 건축가에 의해 지어지었든 고대 그리스 건축가 그리고 비트루비우스와 로마 건축가들의 영향을 음양(陰陽)으로 받은 후예의 작품임에 틀림없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건축십서』, 비트루비우스 원저, 모리스 히키 모건 편저, 오덕성 역, 기문당(2011). 3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