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간첩 사건의 잇따른 무죄판결로 대공 수사력과 수사방식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탈북자를 위장한 간첩들은 치밀한 훈련을 받고 침투해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는가 하면, 대한민국의 법령을 악용해 대공수사망의 허점을 찾아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반면 대공 수사를 전담하는 일선 검사들은 수사 역량과 전문성 부족, 수사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력 미비로 간첩 사건 수사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공안 사건은 간첩행위의 특성상 증거확보가 어렵고 합법과 편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기밀, 안보와 연결된 대공 사범수사는 일반 형사범죄와 다른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바른사회시민회의는 1일 '증거수집 장벽에 아보가 흔들린다:대공 수사력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다. |
대공수사력,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토론문]
〇 곽인수 박사님의 발제문을 잘 보았습니다. 본인이 북에서 대남사업에 종사하셨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신 글이라 배울 점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〇 종합적으로 볼 때 간첩에 대한 더 적극적인 수사나 기소를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또한 저도 여러 차례 강연 및 토론회, 발표문 등에서 언급한 바지만 이적 행위자 개인에 대한 처벌만 가능하고 이적단체의 단체 활동은 방치하는 현행 법 체계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〇 간첩의 변천사를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간첩은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해서 북한과 연결돼 반국가단체를 결성하거나 북한에 정보를 제공한 남한 사람을 제외하고 순순히 북한에서 파견된 경우에 제한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〇 곽 박사님은 북한 간첩의 국내 침투 유형으로 분류하셨지만, 저는 그들의 주요 활동 내용으로 크게 두 부류로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윤택림, 이선실, 권중현, 원진우(진운방), 김동식, 최정남 같은 유형입니다.
〇 윤택림은 1989년 남파된 사회문화부(당시 대남공작 부서) 副과장으로 1980년대 한국의 주사파 학생운동 리더들을 광범히 접촉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김영환 씨로 1991년 밀입북 하였다가 귀환한 이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결성한 바 있습니다.
이선실은 재일교포로 위장 침투해 노동운동가인 황인오를 포섭 권중현을 통해 밀입북 시켜 1991년 중부지역당을 결성케 하고 본인은 당시 공개정당인 민중당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원진우(진운방)는 1980년대 말 말레이시아인으로 위장침투 민혁당의 국내 연락거점으로 활동하다 중부지역당 사건 여파로 북으로 귀환했다가 1998년 민혁당을 검열하러 재남파 되었던 자로, 김영환의 전향을 확인하고 하영옥을 민혁당 총책으로 임명한 후 귀환하다가 여수 앞바다에서 잠수정이 우리 해군에 피격되어 죽었습니다.
김동식은 1995년 한국으로 침투 고려대 학생회장을 지낸 허인회 등 학생운동 출신 리더들을 수 명 만나 포섭하려고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우리 군경과 총격전 끝에 생포된 공작원입니다. 최정남은 1997년 역시 울산에 침투 주사파인 울산연합 정대연을 포섭하기 위해 접촉했으나, 정대연이 국정원의 역공작으로 의심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체포된 자입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운동권의 핵심인자를 포섭 한국 내 지하당 등을 결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〇 이런 유형의 간첩의 활동은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의 비참한 실상이 알려지고 한국 내에서 주사파 운동권이 대거 몰락하면서 사라졌습니다. 1998년 원진우 이후 이런 유형의 활동은 발견된 바가 없습니다. 그 대신 일심회나 왕재산처럼 해외에서 종북세력을 접선해 한국 내 지하 활동을 지시하는 형태로 전환됩니다. 이런 것은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협이 되므로 철저히 방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〇 다음 유형은 2000년대 이후로 발생한 유형으로, 최근에 문제가 두드러진 탈북자로 위장 잠입하는 형태입니다. 유우성과 홍 모 씨가 해당하고 국정원이 중앙합동심문센타 심문 과정에서 체포한 사람이 14명입니다. 이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의 활동 내용의 국가 안보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안보는 최소한의 위험성도 당연히 주시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하지만 지나치게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〇 이들의 주요 임무는 탈북자에 대한 정보 파악 입니다. 탈북자 정보를 파악하는 것도 방지해야 하겠지만, 이들이 탈북자 정보를 제외한 군사정보, 한국정치권 정보, 행정정보 등에서 인터넷에서 취득할 수 있는 정보를 초월하는 정보를 이런 유형의 간첩이 와서 취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메인 스트림으로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세계 2위 해킹 능력을 갖고 있어서 탈북자 정보 상당수도 해킹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북한의 해킹을 막는 것이 이런 유형의 간첩을 막는 것보다 안보상 더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〇 그리고 탈북자에 대한 살해, 위협 등의 목표를 가지고 온 간첩이 있을 수 있는데, 이한영 피살 사건의 경우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 대한 살해 시도 등이 해당됩니다. 물론 이런 것은 심각한 범죄행위이지만 남한에 대한 간첩으로서의 역할보다는 북한에 대한 체제보위가 더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입니다.
〇 법원이 적법절차 등을 문제 삼아 탈북자 간첩 용의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공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도·감청에 대한 제한과 법·제도 정비의 미흡 등으로 증거수집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기 보다는 대공수사기관은 범죄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철저히 획득하고 절차문제에도 신경을 쓰는 좀 더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〇 이 외에도 최근 법원의 여러 판결에 대해 자신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 나올 시에 진보·보수 진영을 뛰어넘어 불만이 밖으로 표출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적인 발언들도 인터넷 상에서는 난무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불만을 가질 자유는 누구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가 공공연히 확대된다면,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최후 보루인 사법적 안정성을 뒤흔드는 것으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봅니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이글은 바른사회시민회의가 1일 개최한 '증거수집 장벽에 안보가 흔들린다:대공수사력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가 발표한 토론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