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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욱 숭실대 교수 |
시각 교정이라는 말이 있었다. 안과 용어가 아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을 상대로 이념 설파를 하기 위한 전초전이라고 해야 하나.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로만 세상을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가령, “박정희가 만주에 있는 일본 육사 나온 거 알아? 거기서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거 아니냐.”라든지 “미국이 한국 전쟁 때 민간인 학살한 거 몰랐지? 그것도 다리 밑에 몰아넣고 잔인하게.” 같은 거. 좀 ‘오바’하는 선배들은 이런 질문도 던졌다.
“6.25가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는 거 알고 있냐?” 지나간 세월이니까 다 용서한다. 당시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는데 토벌은 무슨. 하여간 이런 식으로 충격을 받은 아이들은 5.18 비디오를 통해 적개심을 배웠고 구로공단 여공들의 참담한 생활과 하루에도 몇 개씩 잘려나가는 공장 노동자들의 손가락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를 익혔다.
이후 선배가 던져주는 절반 밖에 보여주지 않는 책을 통해 절반짜리 세상을 배운 후 운동권으로 고고씽~~. 대략 이런 프로세스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1985년 무렵 이런 시각 교정에 걸린 시간은 대략 3개월이었다. 이게 20년이 흐른 2005년에는 달랑 3분으로 단축된다. 사회구조와 모순을 말해주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기득권 수구 꼴통 보수 세력’과 ‘조중동’이라는 말만 배우면 된다. 나머지는 골빈 혹은 정서적으로 뒤틀린 좌익 인사들의 트위터를 받아보며 그냥 끄덕이고 따라하면 그만이다.
세상이 이런 속도이고 상황인데 아직도 책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인지도 모르겠다. 자유주의 양서(良書)를 펴내자는 주장은 이런 반론에 의해 바로 좌절당한다. 일견 맞다. 교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아이들은 전혀 책을 읽지 않는다. 스펙과 관련된 이벤트가 걸리거나 입시와 밀접할 때만 어쩔 수 없이 읽는다. 대출 기록을 보면 금방 안다.
앞서 말한 실익이 있는 도서는 수십 회씩 대출이 된 반면 그렇지 않은 책은 한 번도 빌려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책을 위해 책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장이 있어서 책이 필요한 상황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런데 소생, 대체 왜 자유주의 총서 같은 걸 펴내자는, 물정 모르는 ‘꼰대’같은 소리를 하고 있을까. 그것은 어느 순간 그런 책이 절실하게 필요할지 모르는 한 두 사람의 소중한 인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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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책상 앞에 펼쳐 줄 수 있는 양서가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이고 자유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는 세상을 탓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핑계를 대는 인간들만 나온다. |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말한다. “파란 약을 먹으면 넌 침대에 돌아가서 잠들 것이고 내일 아침 일어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은 채로 그냥 살게 되겠지. 하지만 빨간 약을 먹으면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 수 있게 될 거야. 자 선택하게.” 현실은 영화가 아니므로 아이들 앞에 모피어스가 나타날 일은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평면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역사를 단면이 아니라 다면적으로 보는 순간 이제껏 알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회의가 찾아오는 때는 있을 것이다.
시장은 지옥이고 기업가는 영혼이 없는 동물이고 돈은 악마이고 자본주의는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주장에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변형된 MOT(moment of truth)의 순간이다. 이때 아이들의 손바닥 위에 선뜻 빨간 약을 놓아줄 수 없다면 우리는 기성세대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자유주의는 분노와 감정만 풍부하면 되는 좌익 학습과는 달리 지능과 지속적인 노력의 투입이 필요한 정밀한 작업이다.
자유주의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밀한 공정이 필요하며 당연히 양서가 없이는 선량한 양인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얘기다. 그냥 뭉뚱그려서 ‘아이들’이라고 추상적으로 하니까 멀게 느껴지실지 모르겠다. 당신의 자녀가 자유주의에 대해 알고 싶어 할 때로 가정을 구체화해보자. 떠오르는 책이 있는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도서 목록 열권을 꼽을 수 있는가. 아마 힘들 것이다. 아이들의 책상 앞에 펼쳐 줄 수 있는 양서가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이고 자유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는 세상을 탓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핑계를 대는 인간들만 나온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모르는 인간이 세상을 소중히 여길 턱이 없지 않은가.
해서 자유주의 양서의 필요성은 넘치고 또 넘친다. 미신을 털어내고 과학과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차별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고 불평등은 기필코 개선되어야 하며 경쟁은 가급적 완화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믿음의 세계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러니까 자유주의 양서는 아이들이 타고 나올 정신의 구명보트인 셈이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빼 놓았다. 아이들이 책을 다 안 보는 게 아니다. 일부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 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소수의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나중에 그 아이들이 세상을 끌고 나간다. 그런데도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흩어진 국내외 자유주의 저작들을 한 데 모으고 거기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새로 쉽게 쓴 책을 더하고 이를 총서(叢書)의 형태로 군집시켜 권위와 책으로서의 생존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전략적 방향이므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자유주의 양서 발간, 늦추거나 미루거나 고민하거나 보류하거나 회의(懷疑)하거나 회의(會議)할 필요 없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자 임무이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