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설마 했다. 각본상을 받을 때도,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을 때도, 큰 상(감독상이나 작품상)을 줄 수는 없으니까 아카데미가 이 정도 대접으로 멀리 한국에서 온 괜찮은 영화를 예우해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감독상 수상자로 '봉준호'의 이름이 불렸을 때 입에서 저절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아, 봉준호 감독이 해냈구나. 재주 많은 이 감독을 아카데미도 알아봤구나. 한국영화 위상이 정말 많이 높아졌구나. 흐뭇한 생각들이 잇따랐다.
3관왕 쾌거를 이뤘으니 '됐다' 싶었다. 메인상 가운데 하나인 감독상까지 받았으니까. 마지막으로 발표되는, 최고 영예인 최우수작품상에는 '기생충'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기생충' 포함 작품상 후보가 '포드 V 페라리', '아이리시맨', '조조 래빗', '조커', '결혼 이야기', '1917',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작은 아씨들' 등 8개 작품이나 됐다.
워낙 쟁쟁한 작품들이 많았고, 그동안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의 면면을 볼 때 가장 미국적이면서 할리우드식 보편성을 띤 작품, 예를 들면 '1917'이 작품상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작품상 수상작으로 '기생충'이 호명됐다. 봉준호 감독과 주연 배우들, 제작자 등 '기생충' 관계자들도 놀랐고, 시상식에 참석한 대부분의 미국 영화인들도 깜짝 놀랐다. 당황스런 결과에 처음에는 박수도 잘 터져나오지 않았다.(물론 이후 전원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해줬지만)
막상 '기생충'이 감독상에 이어 작품상까지 휩쓸며 4관왕에 오르자, 도대체 왜 아카데미가 봉준호와 '기생충'을 선택했는지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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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앤드크레딧 |
물론 '기생충'은 감독상이든, 작품상이든 수상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하지만 한국어로 된 한국산 영화다. 대부분의 미국 관객들이 극장에서 자막 없이는 '기생충'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자막과 함께 관람하더라도, 디테일한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가 얼마나 공감대를 이끌어냈을지는 의문이다. 한국적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온전히 영화를 감상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아케데미는 '역사적인' 선택을 하며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놀랍고도 역사적인 결과가 나타난 것은 영화를 영화로 봤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영화는 산업화의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예술이다. 종합예술이다. 예술의 원천은 사람(휴머니즘)이고, 창의력이다.
'기생충'은 사람 얘기를 다뤘다.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 속 대척점에 놓인 사람들(부자와 가난한 자)의 얘기를 다소 극단적인 방법으로 풀어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기생충'이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가장 큰 미덕인 영화적 상상력으로 하나의 가상 드라마를 만들었다. 기발하고 창의적이었다.
아무리 담고 있는 내용이 좋은 작품이라고 해도,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 즐기는 관객들의 호응이 없으면 외면받는다. '기생충'은 재미라는 미덕까지 갖췄다. 2시간 넘는 시간동안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으면서 쉽게 상상하기 힘든 결말로 이끈다. 굳이 교훈적인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는데도 보고나면 여운이 남는다.
아카데미상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전통과 권위를 인정받지만 그동안의 시상식에서는 뚜렷한 한계도 보여줬다. 미국적인 것이 우선시 됐고, 영어권 이외의 작품에는 냉정했다.
이번 시상식은 달랐다. 영화를 영화로만 평가하는 데 더 충실했다.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영화가 '기생충'이었고, 그것을 완성도 높게 만든 감독이 봉준호였다.
'기생충'이 국제장편영화상(이전 외국어영화상) 수상에 머물지 않고 각본상뿐 아니라 감독상과 작품상을 모두 거머쥐게 해준 아카데미. 시상식이 근 100년의 역사가 다가오면서(이번이 92회였다), 할리우드가 쓴 통렬한 반성문이 아닐까.
[미디어펜=석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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