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권가림 기자]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사용료에 대한 소송을 내면서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와 글로벌 콘텐츠공급자(CP)간 망 사용료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제화가 세워지지 않으면 국내 진출을 앞두고 있는 '디즈니+' 등과의 망 사용료 협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 이용자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의 민사 소송에 대응하는 반소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넷플릭스는 지난 13일 서울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이용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채무부존재 확인' 민사소송을 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다음달 양사의 망 사용료 관련 중재안을 내놓을 예정이었지만 넷플릭스는 방통위가 결론을 내리기 직전에 민사소송을 내 법원 판결에 따라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SK브로드밴드와 같은 ISP는 인터넷망을 구축하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CP가 그 망을 이용해 사용자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해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하지만 이 망에 대한 사용료 기준은 명확하지 않고 글로벌 CP사들 대부분이 협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국내 ISP 업계는 속을 썩는 모양새다.
넷플릭스의 한국 내 이용자 수는 2018년 40만명에서 올해 200만~300만명으로 급증해 트래픽을 안정화하기 위한 국내 ISP사들의 투자 부담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SK브로드밴드의 경우 지난해 세 차례에 이어 올해에만 네 차례 해외 망을 증설했다. 이달에도 해외 망을 추가 증설할 계획이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는 인프라 증속에 한계가 있는 데다 트래픽 폭증을 유발하는 넷플릭스도 이용자들의 서비스 퀄리티 보장 차원에서 일부 망 사용료 분담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유럽에서 비트레이트를 낮추는 방식으로 전체 트래픽의 25%를 줄였는데 이는 트래픽 조정 결정권이 CP사에도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며 "넷플릭스 트래픽은 예측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어 해외 망을 증설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외 CP를 둘러싼 역차별은 해결돼야 할 과제지만 상황은 복잡하다. 지난해 법원은 법률상 서비스품질관리에 대한 글로벌 콘텐츠 기업 책임을 규정한 법률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방통위와 페이스북간 행정소송에서 페이스북 손을 들어줬다. 이에 국내외 CP가 망이용대가 인하와 이를 위한 상호접속 고시 개정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디즈니+ 등 글로벌 OTT사들의 국내 진출이 예고된 만큼 글로벌 기업들도 강제 규제할 수 있는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대 국회에서 '온라인동영상제공사업', '인터넷동영상방송' 등의 법안이 제출됐지만 사실상 통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가 망 이용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강제성은 없어 글로벌 CP 입장에서는 실효성이 없다고 느껴진다"며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 총선에서 공약으로 제시한 '글로벌 CP사에 대한 역차별 해결'도 해외 사업자들의 신속한 피드백을 받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규제 대상과 책임 범위 등을 두고 갈등을 빚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폭증하는 트래픽과 통신사 망 증설 한계가 맞물리면 피해는 이용자 몫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협상 문제해결에만 나설 게 아니라 이용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이용자 보호 대책 마련에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서로 부딪히며 자연스러운 거래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어서 관망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정부, 시민단체 등 파수꾼이 많고 OTT에 대한 법적 정의가 세워지지 않아 시장의 적정 대가가 산정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평가했다.
[미디어펜=권가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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