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 천명 ‘새로운 길’ 구체화해 협상 및 비핵화 조건 제시
협상 문턱 높이면서 유화적인 메시지, 트럼프 재선이 유리하다 계산
[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10일 발표한 담화는 한층 까다로워진 대화 및 비핵화 조건 제시에도 불구하고 대미 유화적인 메시지가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담화의 맨 마지막에 “미국 독립절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고 말한 대목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강행된 독립기념일 행사에 대한 비판여론이 인 것을 감안해 조롱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전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재선 기원이 함께 언급돼 북미 간 접촉 가능성을 열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작년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크리스마스 선물’ 발언으로 군사도발을 예고하며 압박해오던 북한이 미 대선을 앞두고 “김정은 위원장 동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에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고 노골적으로 밝힌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협상에 유리하다는 계산을 마쳤다는 의미로 읽힌다. 사실상 김 제1부부장은 김 위원장의 입장이라며 “미국에 위협을 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적어도 대선 전까진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한 염려를 덜게 됐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8일 평양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이동하고 있다. 바로 앞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은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신형 전략무기 공개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운동에 장애가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대선 승리를 기원해주고 접촉할 의사까지 표명한 북한에 대해 미국이 어떤 형식으로 응답할지 주목된다. 김 제1부부장이 담화 첫머리에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미국측에나 필요한 것이지 우리에게는 무익하다”고 했으므로 미국의 다음 카드 선택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졌다.

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라는 강수를 두면서 화들짝 놀란 듯 이뤄진 한미 간 접촉 끝에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방한을 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3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 대선을 3개월여 남긴 지금 상황에서 ‘10월의 서프라이즈’가 회자되는 것만으로도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눈길을 자신들에게 향하게 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천명해 쉽지 않은 협상을 예고했다.

이번에 김 제1부부장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그러면서 우선 협상 재개의 조건과 비핵화의 조건을 제시했다. 담화에서 “이제는 적대시 철회 대 조미협상 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면서 “비핵화는 타방의 불가역적인 중대조치가 동시에 취해져야 한다”고 했다. 김 제1부부장은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상대해야 하며 그 이후 미국정권, 나아가 미국 전체를 대상해야 한다”며 대화의 문턱을 한층 높이고, 비핵화 조건을 까다롭게 제시한 것이다.

‘냉온 전략’도 엿보이는 이번 김 제1부부장의 담화는 하노이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천명한 ‘새로운 길’을 구체화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첫째 “그저 우리를 다치지만 말고 건드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편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말해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메시지가 있다. 둘째 협상에 임하더라도 핵보유국으로 동등하게 나서겠다는 것이며, 셋째 비핵화 방식은 동북아 안보환경을 바꾸는 핵군축 협상이 될 것으로 누가 됐든 미국의 다음 행정부까지 염두에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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