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 공감…기본급 동결 불구 성과급 등 1인당 평균 830만원 챙겨 기대속 우려도
현대자동차 노사가 지난 21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에서 기본급 동결을 골자로 하는 임금협상안에 잠정 합의했다. 전체 조합원의 추인 절차가 남아있지만 2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현대차 노사가 기본급 동결에 합의한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9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1년만에 기본급 동결 합의가 나왔다. 본협상을 시작해서 합의까지 걸린 시간은 40일로 2009년(38일)에 이어 두 번째로 신속하게 협상이 마무리됐다.

현대차 노사가 이 같이 협상을 타결한 것은 현대차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그만큼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올해 상반기 실적이 그 심각함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내수시장 판매량은 38만4613대로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으나 글로벌 판매량은 158만9429대로 25% 이상 줄어 전체적으로 24% 감소세를 보였다. 매출액은 7.4%, 영업이익은 30% 가까이 급락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적인 수요 감소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어 흐름을 타지 못하거나 경쟁력이 떨어지면 생존 자체를 담보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대차 노사가 대결보다는 타협을 선택한 것은 여러모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합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려할 만한 대목도 적지 않다. 기본급은 동결했지만 별도로 성과급 150%와 코로나 위기극복 격려금 120만원, 우리사주 10주(약 175만원 상당), 전통시장 상품권 20만원 등 조합원 1인당 평균 830만원 상당의 이익이 제공된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실업의 위기에 떨고 있는 부품업체 직원들이나 같은 생산라인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 협력업체 직원들은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혜택이다. 

   
▲ 현대자동차 노사가 지난 21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에서 기본급 동결을 골자로 하는 임금협상안에 잠정 합의했다. 전체 조합원의 추인 절차가 남아있지만 2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 중국 업체의 추격 등으로 위기에 내몰린 상태에서도 1인당 연간 8000달러 상당의 금전적 이득을 챙기는 것은 글로벌 차원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정몽구 회장 일가의 현대차 지배권이 취약한 가운데 우리 사회의 최대 기득권 세력으로 꼽히는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인 현대차 노조원들만이 누릴 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시니어 촉탁 문제에 대한 합의다. 정년 퇴직자 중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 최대 1년간 신입사원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계약직으로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이는 온갖 스펙을 쌓아도 취직이 안되는 미래 세대의 취업기회 박탈이라는 관점에서 공정의 문제를 야기한다. 사실상의 정년 연장보다는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퇴직 대상자들을 상대로 한 교육, 훈련,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고도화해 제2의 인생을 잘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른 길이다.

현대차 노사는 이번 합의에서 '노사 공동발전 및 노사관계 변화를 위한 사회적 선언'도 채택했다. 노사는 선언에서 ▲국내 공장의 미래 경쟁력 확보와 고용안정 ▲자동차 산업의 변화 대응과 산업 변화에 대비한 직무 전환 프로그램 운영 ▲품질 향상, 자동차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부품 협력사 상생 지원 등에 합의했다. 내연기관 시대의 종식, 무인화의 가속화 등이 진행되는 가운데 노사가 공존의 길을 가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경영권을 침해하는 부분도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노사가 대결보다는 협력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현대차 노동조합 게시판에는 여전히 '자본가는 악', '노동자는 선'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쓴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노동자가 없으면 기업도 없다', '자본가는 재벌이 되는 데 노동자는 왜 착취당해야 하는가' 등 임단협 타결을 규탄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강경 발언이 선명해 보이지만 세계 경쟁 속에서 기업과 노동자가 공존공영의 길을 찾아야 하는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구시대적 발언에 불과하다.

산업혁명 직후 영국에 살던 마르크스를 분노케 한 악독한 자본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차 노동자도 더 이상 힘없이 착취만 당하는 노동자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기업의 번영과 일자리, 근로혜택을 유지하기 위한 협력이 절실해졌다. 

이 시대 노조의 핵심역량은 투쟁이 아니라 노사 공존과 번영의 지속에 모아져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 남북 평화경제 확대 등 정치적 담론은 정치권에 맡기고 단위노조는 사업장의 번영, 노동자들의 복지 확대에 힘써야 한다. 현대차 노사의 이번 무분규 합의가 대립적 노사문화를 협력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