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첫 포착 뒤 3시간, 대통령에 첫 보고 뒤 4시간 지켜보기만
에이브럼스 사령관도 10일 북의 ‘국경 살상 명령’ 밝힌 바 있어
[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선원 A씨가 북측 해상에서 사살되고 불태워진 사건과 관련해 북측이 하루만인 25일 통지문을 보내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미안함을 전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했고, 청와대 국가안보실 사무처장이 무장 안한 우리국민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것에 대해 반인륜적 행위로 규정하고,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 조치를 요구한지 하루만이다.   

북측은 통지문에서 자신들이 파악한 이번 사건의 경위를 상세하게 설명했는데 이를 볼 때 당초 A씨가 실종된 상황에서 우리 군에 포착된 22일 오후3시30분부터 총격을 당하고 불태워지는 불꽃이 포착된 같은 날 오후10시11분까지 6시간 동안 우리 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커진다.

합동참모본부는 24일 우리 군에 의해 처음 포착된 A씨는 당시 북방한계선(NLL) 북쪽 3∼4㎞ 해역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부유물을 붙잡고 표류 중이었다고 했다. 또 A씨가 자신에게 접근한 북한 군에게 월북 의사를 표했지만 무참하게 사살된 뒤 시신까지 불태워졌다고 밝혔다. A씨가 북쪽 해상에 있었다고 하지만 우리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전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군은 실제로 당시 A씨를 구조하기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군은 북한군이 A씨를 사살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고, NLL 북쪽에서 사건이 발생해 군사작전을 진행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실종) 신고를 접수하자 탐색 전력을 동원해서 찾는 노력을 했고, (A씨가) 북한에서 구조돼 이런 저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우리 군이 A씨를 발견하자마자 신속한 대응을 지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청와대는 첩보를 입수하고, 입수한 첩보를 분석하기 위해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저녁 6시쯤 첫 서면 보고를 받고 A씨의 실종과 북측 해상에서 발견된 사실을 알게 됐고, 23일 오전 8시30분 A씨가 피격당하고 불태워진 사실을 대면 보고받았다.

   
▲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측 해상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5일 이 공무원이 피격된 것으로 추정된 황해도 등산곶 해안이 보이는 우리 영해에서 해군 함정이 경비하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해안이 등산곶 인근 해안이다./연합뉴스

그런데 우리 군 당국은 22일 오후 3시30분 A씨가 북한 군인에게 발견된 것을 포착했으므로 문 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기까지 2시간 이상을 그냥 해상만 지켜보면서 흘려보낸 셈이다. 이후 그날 오후 10시쯤 A씨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될 때까지 4시간이란 기회가 있었지만 청와대의 지시도 군의 조치도 없었다.     
 
앞서 서욱 장관이 밝힌 것처럼 우리정부는 북한이 A씨를 설마 사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는 최근 북한이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라 사살 명령까지 내려 국경 단속을 엄중히 하고 있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정부가 파악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미 북한 치안 당국은 지난 8월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국경 봉쇄 지침을 하달해 국경 봉쇄선에서 1~2㎞까지 방역 완충지대를 설정하고, 이곳에 들어오거나 국경 차단물에 접근하면 사람은 물론 동물까지 무조건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 지침으로 지난달에만 수차례에 걸쳐 북한 주민 여러 명이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도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화상회의에서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에 1~2㎞의 새로운 ‘버퍼존’(완충지대)를 설치했다”며 “이 지역에 북한 특수작전부대(SOF)가 배치됐으며 (무단으로 국경을 넘는 이들에 대한) ‘살상 명령’이 내려졌다”고 밝힌 바 있다.

북측은 이날 통지문을 통해 해상경계 근무규정이 승인하는 행동 준칙에 따라 40~50m 거리에서 A씨를 사살한 것은 맞지만 사격 후 아무 움직임이나 소리가 없어서 10여m 거리까지 접근해 확인 수색한 결과 부유물만 있어서 이를 국가비상방역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정부의 전날 발표에 대해 “증거도 없이 일방적은 억측으로 만행, 응분의 대가 등과 같은 대결적 표현을 골라 쓰니 큰 유감”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이례적인 사과는 나왔지만 A씨의 시신이 불태워졌는지 아닌지에 대한 남북 간 주장이 다른 상황을 맞았으니 지금이야말로 남북 공동조사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주장이 나왔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받아야할 것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사과 세 가지인데 이 중 북측이 사과를 먼저 전했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관련해 북한의 정황 설명을 수용할지 말지에 대한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며 “특히 남측의 시신 훼손과 북측의 부유물 소각 주장이 대립하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남북공동조사와 유가족 현장 방문, 해상 장례식 등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정부는 이번 사건을 국민이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이해가 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고, 북측도 자신들이 이번에 밝힌 남북 사이의 신뢰와 존중을 위한 각성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임을 자각하고 향후 남북대화에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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