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하며 재계를 이끌었던 거목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6년여의 투병 끝에 25일 향년 78세로 눈을 감았다.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겠다던 약속을 지키고 떠났다. 우리는 '반도체 코리아' 신화를 쓴 주인공을 잃었다.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삼성을 국내 대표기업으로 키웠다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진정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기업인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이뤄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제 2창업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건희 회장이 일군 업적은 기적이자 신화다. 1987년 취임 후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 쓰러지기까지 이건희 회장은 27년간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이 회장은 취임 당시 9000억원이던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2014년 3조7634억원으로 348배 증가했다.
매출은 9조9000억원에서 338조6000억원으로 34배 뛰었다. 자산은 8조원에서 575조1000억원으로 70배 넘게 증가해 명실상부한 재계 1위에 올랐다. 수출 규모는 63억 달러에서 1567억 달러(2012년 기준)로 25배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 중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13.3%에서 28.2%로 배 이상 늘어났다.
임직원 규모는 10만여명에서 국내외를 합쳐 42만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위상도 수직상승했다.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2013년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삼성그룹은 8위에 올랐다. 당시 브랜드 자산가치는 당시 396달러(약 40조4712억원)였다.
이건희 회장이 뿌리 내린 삼성의 초일류 기업을 향한 도전은 진행형이다. 지난 20일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최고 글로벌 브랜드'에서 삼성전자는 한국기업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5위에 올랐다. 삼성전자의 올해 브랜드 가치는 623억달러(71조원)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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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하며 재계를 이끌었던 거목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6년여의 투병 끝에 25일 향년 78세로 눈을 감았다.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겠다던 약속을 지키고 떠났다.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
오늘의 글로벌 삼성은 이건희 회장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과 미래를 읽는 혜안이 일궈낸 성과다.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반도체와 휴대폰은 과감하고도 선제적 투자의 결정체다. 삼성의 미래 성장주인 전기차 배터리와 바이오의약품 등 신사업도 대규모 적자에도 공격적 투자를 독려한 이 회장의 선택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 임직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향해서도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촌철살인의 말들은 '메시지 경영'으로 불리며 '이건희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다 바꿔라"라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 대표적이다.
이는 그룹의 체질을 뼛속까지 개선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삼성의 성공 신화는 이런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한 혁신과 체질 개선이다. 이 회장의 '위기경영'을 앞세운 혁신과 체질변화는 결국 소니, 애플 등 글로벌 경쟁사를 제치고 세계 최대,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설 수는 있는 발판이 됐다.
이병철 회장의 3대 경영이념은 자율경영, 기술중시, 인간존중이다. 여기에 이 회장은 서구 합리주의와 경쟁주의를 접목했다. 집념과 승부욕으로 항상 일등이 되어야 한다는 '제일주의'와 함께 "기업은 언제나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경영'을 강조했다.
1995년 5월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미래 국제포럼에서 이회장은 "경영자는 알아야(知) 하고 행동해야(行) 하며 시킬(用) 줄 알아야 하고 가르칠(訓) 수 있어야 하며 사람과 일을 평가할(評) 줄도 아는 종합 예술가로서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기업 경영자들이라면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이런 이 회장의 혜안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2020년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삼성을 더 삼성답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는 삼성의 저력은 이런 DNA에 뿌리하고 있다. 시장의 변화에 미리 대비하고 체질 개선을 해 나가는 것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삼성의 경영철학'이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 경영 27년은 끊임없는 위기의식 속에서 한 발 앞서 나가는 변화와 혁신이었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거나 만족함 없이 '초일류'를 지향한 것이 오늘의 삼성을 만들었다. 세계 1위 가전의 영광은 2005년 '밀라노 선언'을 통한 '디자인 삼성'이었다. 공전의 히트작인 갤럭시S 시리즈는 2010년 다시 한번 삼성 '위기론'에서 탄생했다.
이건희 회장은 이상은 기업에만 그치지 않았다. 사회·문화·스포츠 전 분야에 걸친 공헌사업도 남달랐다. 1989년 재계 처음으로 당시 달동네였던 송파구 마천동에 '천마 어린이집'을 세웠다. 초등학생 공부방인 '사회봉사단', 중학생 무료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드림클래스'를 설립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 회장의 공헌은 빼 놓을 수 없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당시 이 회장은 2009년부터 무려 170일에 걸친 해외 출장에서 100여명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을 만난 끝에 유치를 일궈냈다. 한국 스포츠 구석구석에 삼성의 흔적이 묻어있지 않은 곳이 없다,
'반도체 왕국'을 일군 그가 떠났다. 세계 속에 삼성이라는 큰 족적을 남긴 채 오랜 병마 끝에 스러졌다. 지금 코로나로 세계는 또 다른 위기에 봉착했다. 반기업 정서와 규제가 판치는 국내 기업인들의 현실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그의 고언이 그립다. 그의 혜안이 더 더욱 보고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미디어펜=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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