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거목'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타계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삼성호'의 방향타를 잡고 혁신을 주도했다. 그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기술·인재·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삼성을 글로벌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삼성의 운명을 바꾼 '초격차 승부사' 이 회장의 발자취를 5회에 걸쳐 되돌아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한진 기자]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은 기술 기업으로 통한다. 미국 정보기술(IT) 공룡들과 대등하게 맞설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가 바로 삼성이다. 기술을 바탕으로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올해 처음 ‘글로벌 톱5’에 진입했다. 삼성은 ‘초격차 기술’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의 패권까지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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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이 CES2010에서 3D 안경을 쓰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
현재의 삼성을 만든 배경에는 고 이건희 회장의 ‘기술경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특히 이 회장이 기틀을 닦은 반도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삼성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아무도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 일본보다 20~30년 뒤쳐졌는데, 따라가기나 하겠는가”라는 주변의 냉소도 적지 않았다.
실제 1974년 이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 지금은 ‘삼성=반도체’라는 공식이 일반적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반도체 인수는 말도 안되는 공상소설과 같은 이야기였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까지 내놨다.
그러나 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라며 반도체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1986년 7월 삼성은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했다. 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데 이어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점유율도 1위를 기록,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반도체의 성공에 이어, 애니콜 신화가 뒤를 이어받았다. 신경영 선언 이후 이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1995년 8월 애니콜은 전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이 회장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해 21세기 초일류 기업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또 한 번의 계기를 만들었다.
이 회장은 “새 천년이 시작되는 올해를 삼성 디지털 경영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제2의 신경영, 제2의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사업구조, 경영 관점과 시스템, 조직 문화 등 경영 전 부문의 디지털화를 힘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전략과 기회를 선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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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이 2011년 반도체 16라인 가동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
2020년 현재 삼성은 명실상부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브랜드 가치는 623억달러로 글로벌 5위에 자리하고 있다. 기술은 삼성의 가장 큰 자산이다. 삼성의 경쟁력과 함께 국가 가치도 올라가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이 회장의 역할과 삼성의 위상을 설명했다.
이 회장 빈소를 찾은 반 전 총장은 “고인은 평소 미래를 내다보는 높은 식견을 갖고, 혁신의 기치 아래서 과감한 도전 정신을 가지고 삼성을 세계의 일류 기업으로 발전시켰다”며 “이것은 대한민국 국격을 높인 것이다. 국제사회 활동을 하면서 늘 삼성 하면 코리아, 또 한국 하면 삼성을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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