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관 등 피장자 장신구 일체 발견…순장자 추정 치아·다리뼈도
   
▲ 금동관과 관모 추정 직물 발견 [사진=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약 1500년 전에 존재했던 비화가야의 지배자 무덤에서, 각종 장신구가 다량 출토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금까지 한 번도 도굴되지 않았던 경남 창녕의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63호분에서 금동관 등 다량의 장신구가 피장자에 부착됐던 원래 상태 그대로 발견됐다고 28일 밝혔다.

비화가야는 창녕을 거점으로 삼은 가야 세력으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 묘역이며, 목마산과 화왕산 기슭에 조성돼 있다.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63호분은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 있는 무덤 250여기 중 아직까지 유일하게 도굴 흔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4년부터 이곳 고분군 중에서 미정비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왔는데, 지난해 11월 39호분 봉토에 가려져 있던 63호분의 매장주체부(시신 안치하는 곳)를 열었으며, 올해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매장 당시 피장자를 장식했던 장신구 일체를 확인했다.

금동관을 비롯해 금동 드리개(늘어뜨린 장식) 및 막대장식, 금으로 만든 굵은고리귀걸이 1쌍, 남색 유리구슬을 3∼4줄로 엮어 만든 목걸이, 은반지, 은허리띠 등이 출토됐다.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 고분 중, 머리에서 허리 부분까지 매장 당시 착장했던 유물이 제 위치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동관은 높이 약 21.5㎝로 맨 아래에 너비 약 3㎝의 관테(관을 쓸 수 있게 만든 띠)가 있고, 그 위에 3단의 나뭇가지 모양 세움장식 3개가 있다. 

관테 아래 양쪽에는 곱은옥과 금동구슬로 제작한 장식을 늘어뜨렸고, 관테 양 측면에는 원통형 금동막대 장식이 있으며, 세움장식 밑면에는 관모(冠帽, 모자)로 추정되는 직물의 흔적도 있다.

전체 너비 45㎝의 은허리띠에서는 은으로 장식한 작은 칼 2개와 띠끝의 장식이 확인됐고, 오른손에서 1개, 왼손에서 3개의 은반지가 나왔으며, 피장자의 오른 팔뚝 부분에서는 팔찌로 추정되는 원형 금판에 연결된 곱은옥과 주황색 구슬들이 발견됐다.

유물이 출토된 63호분의 석곽은 길이 640㎝, 너비 130㎝, 깊이 190㎝ 규모로, 피장자는 머리를 남쪽으로 뒀다.

피장자의 머리 위쪽에는 토기 및 철제 유물을 함께 묻은 부장공간(길이 190㎝, 너비 130㎝)이, 피장자의 발치 아래쪽에서는 바닥이 약 40㎝ 낮은 순장용으로 추정되는 공간(길이 220㎝, 너비 130㎝)이 확인됐다.

치아 및 다리뼈 일부 등 인골이 발견된 위치와 매장상태를 봤을 때 순장용으로 추정되는 공간에는 두 명이 안치됐던 것으로 추정되며, 곳곳에서 꺾쇠가 다량 확인돼 순장자도 목관에 안치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순장용 공간에서는 금동제 가는 고리 1점, 항아리 2점, 쇠도끼 2점, 쇠낫 1점도 출토됐다.

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조사로 비화가야 무덤의 축조기법과 장송 의례를 이해하고,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위치해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가 나타나는 비화가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 연구소는 다음 달 5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를 통해 발굴 당시 녹화한 동영상을 공개하고, 온라인 발굴조사 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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