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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로 지정 예고된 '기사계첩' [사진=문화재청 제공] |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300년 넘게 풍산홍씨 집안에 원형이 보존된 상태로, 대대로 전해진 왕실 하사품 '기사계첩'(耆社契帖)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조선 숙종 때 화첩 기사계첩(보물 제639호)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지난 1978년 보물로 지정된 기사계첩은 1719년(숙종 45년) 숙종의 기로소(耆老所) 입소를 기념해 제작된 것이다.
계첩은 행사에 참여한 관료들이 계를 조직해 화원을 불러 만든 것으로, 오늘날 기념사진처럼 참석자 숫자대로 제작해 나눠 갖는 것이 풍습이었다.
기로소는 나이 70세를 넘은 정2품 이상 문관을 우대하던 기구로, 당시 숙종은 59세여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나, 태조 이성계가 60세에 들어간 전례를 따라 다소 이른 나이에 입소했다.
기사계첩은 기로소에 입소한 관료(기로신)들에게 나눠줄 11첩과 기로소 보관용 1첩 등 12첩이 제작됐는데, 완성 시기는 1720년이다.
현재 기사계첩은 총 5건이 전해지는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지난해 국보 제325호로 지정됐고, 이화여대박물관이 소장한 1건은 보물로 지정된 상태며, 2건은 비지정문화재다.
이번에 국보로 예고된 기사계첩은 현존하는 다른 기사계첩과 유사하다.
기로소 문신 임방(1640∼1724)이 쓴 서문, 경희궁 경연당 연회에서 숙종이 지은 글, 대제학 김유(1653∼1719)의 발문, 행사 참석자 명단, 행사 기록화, 기로소 문신 11명의 명단과 초상화, 기로신들이 쓴 축시, 계첩 제작자 명단이 있다.
그림은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경현당석연도(景賢堂錫宴圖),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순이다.
다른 기사계첩과의 차이는 '만퇴당장'(晩退堂藏, 만퇴당 소장), '전가보장'(傳家寶藏, 가문에 전해 소중히 간직함)이란 글씨가 있다는 점인데, 이 글씨는 1719년 당시 행사에 참석한 기로신 중 한 명인 홍만조(1645∼1725)에게 하사된 후 집안에 대대로 전승되어 온 경위와 내력을 말해 준다.
특히 300년이 넘었음에도 하사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됐다.
문화재청은 "내함(內函, 궤 안에 담는 함), 호갑(護匣, 가방 형태의 보자기), 외궤(外櫃, 맨 바깥 상자)로 이뤄진 삼중 보호장치 덕분"이라고 설명했는데, 화첩을 내함에 넣고 호갑을 두른 후, 이를 외궤에 넣어 하사한 것.
문화재청은 "이 기사계첩은 조선 왕실에서 민가에 내려준 물품의 차림새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면서 "왕실 하사품이 일괄로 갖춰진 희소한 사례일 뿐만 아니라, 제작 수준도 높아 화첩의 완전성을 돋보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진년 연행도첩',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1',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 '미륵원명 청동북'은 보물로 예고 됐다.
경진년 연행도첩은 1760년 11월 초 한양에서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으로 출발, 이듬해 4월 초에 귀국한 동지사행(冬至使行)의 내용을 영조가 열람할 수 있도록 제작한 화첩이다.
사행단을 이끈 홍계희가 쓴 발문에는 영조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잡혀있던 심양관 옛터를 자세히 살피라는 명을 내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심양관과 산해관의 옛터, 연경의 문묘 등 그림도 들어 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1의2는 당나라 불경에 세조가 한글로 어미와 조사 등을 단 것을 기초로, 판본을 만들어 금속활자로 간행한 불경으로, '원각경'(圓覺經)이라고도 불리는데, 고려 시대 이후 사찰에서 수행을 위한 교과목 중 하나로 채택돼 널리 유통됐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1은 1481년 홍문관 학자들과 승려들이 왕명을 받아 당나라 시인 두보의 '두공부시'(杜工部詩)를 내용별로 분류, 우리말로 번역해 편찬한 '분류두공부시(언해)'의 권11에 해당한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간행한 번역시집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은 17세기 승려 의천이 발원해 1663년에 제작된 마애불로, 경북 봉암사 옥석대에 있으며, 제작 시기와 주관자, 명칭이 의천의 제자인 명찰의 문집 '풍계집'(楓溪集)에 실려 있다.
좌상은 높이 539.6㎝, 너비 502.6㎝로 둥글고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콧날, 부드러운 눈매, 단정히 다문 입 등이 자비롭고 인자한 인상이다.
미륵원명 청동북은 측면에 음각으로 새겨진 명문에, 1190년(고려 명종 20년) 미륵원(彌勒院)에 걸기 위해 제작했다고 기록됐다.
12세기 청동북 중 비교적 큰 크기이며, 문양의 조각 솜씨가 좋고 주조 기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청동북 제작 기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예고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보 및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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