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 공천 위한 당헌 개정 절차로 명분 쌓지만
‘현직’ 대통령의 혁신 조항을 ‘차기’ 대권 위해 포기
[미디어펜=조성완 기자]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을 위한 당헌 개정 절차에 돌입했다. 1년 남짓한 임기의 광역자치단체장 자리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까지 파기한 것은 결국 차기 대권 승리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대표는 29일 “저희 당 잘못으로 시정 공백을 초래하고 보궐선거를 치르게 한 것에 서울·부산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거듭 사과드린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상 공천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인호 수석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이 대표의 이런 제안과 취지는 내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러 고심이 있었지만 공당이자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더불어민주당

그간 민주당 내에서는 보궐선거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후보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문제는 명분이었다. 이 대표가 선택한 전당원 투표는 결국 공천 강행을 위한 명분 쌓기로 해석된다.

민주당은 오는 31일과 다음달 1일 전당원 투표를 실시하고 찬성 의견이 많으면 다음주 중 당무위와 중앙위 의결을 통해 당헌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 전당원 투표 제안문에 ‘국정과제 완수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재보선 승리는 매우 중요하다’고 표기하는 등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당 내에서도 당헌 개정 절차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논란이 된 민주당 당헌 96조는 지난 2015년 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혁신위원회가 만든 조항이다. 한 관계자는 “1년도 채 안되는 임기를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댓가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문 대통령의 ‘약속’을 파기하면서까지 공천을 강행하는 것은 결국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내년 보선은 차기 대선을 앞두고 조직을 점검하는 동시에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선거다. 결과에 따라 차기 대선 플랜을 재조정할 수 있는 중간 시험의 성격인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쉽게 포기하기 힘든 상황이다.

   
▲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영결식./사진=연합뉴스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 중인 우상호 의원은 30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우리가 후보를 내지 않아서 국민의힘 후보들이 당선된다고 치면 그 다음은 대선 국면”이라면서 “국민의힘 서울·부산시장이 연일 반정부적 행보를 하게 될 경우에 주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의원도 “단순히 임기 1년짜리 단체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아니라 대선을 앞두고 민심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선거”라면서 “집권여당으로서 후보를 공천하고 국민의 판단에 따르는 것도 책임의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야권은 집권여당의 약속 파기를 맹비난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집권 여당이 한차례도 아니고 거의 기만과 사기에 가까운 일을 서너 차례나 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을 사기 공화국으로 만드는 데 앞장설 셈이냐”라고 질타했다.

성일종 의원은 KBS라디오에 출연해 “국민을 무시하는 게 너무 도를 넘었다”라며 "지금 와서 후보를 내겠다는 건 너무 이중적이고, 이 문제는 대통령이 좀 대답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의당도 “공천 강행의 알리바이용 당원 총투표”라면서 “스스로에 대한 약속인 당헌·당규도 지키지 못하면서 국민의 삶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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