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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로 분리된 경주 월성 1호 석축해자와 도로 자취
[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신라 왕궁인 경주 월성(月城·사적 제16호)의 1호 석축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에 둘러 판 못)가 하나가 아닌 두 개였던 것으로 밝혀졌고, 두 해자 사이는 월성과 북쪽의 계림을 잇는 도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신라왕경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추진단과 경주시가 해자를 물이 흐르는 석축해자로 복원하는 과정 중, 미발굴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월성은 신라 파사왕 22년(101)에 조성됐다고 전해지는 유적으로, 지난 2014년 12월부터 진행된 발굴조사는 반달 모양인 월성을 서쪽부터 순서대로 A∼D지구로 나누고, A지구와 C지구를 먼저 발굴했다.
C지구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문화층 2개와 신라시대 문화층 5개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8세기 관청으로 추정되는 많은 건물터 유적을 찾아냈다.
A지구 서성벽에서는 5세기에 매장한 것으로 보이는 인골 2구와 토기 4점이 발견됐는데, 이 유골은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친 국내 첫 사례여서 주목을 받았다.
또 월성 북쪽에 조성한 해자에서는 글자를 쓴 묵서 목간과 수많은 식물 씨앗, 동물 뼈가 나왔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를 통해 기존에 하나로 여겨졌던 월성 북쪽 맨 왼쪽의 1호 석축해자가 두 개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울러 두 석축해자 사이에서는 북쪽 계림까지 이어지는 도로 유구(遺構, 자취)가 발견됐는데, 폭 5m 이하의 소형 도로로 추정된다.
이 도로는 통일신라부터 고려, 조선시대까지 사용됐으며, 현재도 탐방로로 이용되고 있다.
연구소는 "이 도로 유구가 국가적 제의 공간과 관련된 계림 및 황남동 대형건물터 유적과 통하고 있어 왕궁 도로망에 대한 중요한 연구자료"라고 설명했다.
인골 2구가 발견됐던 서성벽의 축조 공법도 확인됐다.
성벽 기저부에서 볏짚을 포함한 각종 유기물질, 목탄 등을 섞어 흙을 교대로 깔았던 흔적과 흙덩어리를 쌓은 자취가 발견됐으며, 성벽 안쪽에서는 돌을 일렬로 쌓은 석렬(石列)이 확인됐다.
1호 석축해자 북쪽에서 통일신라시대 대형 건물터도 발견됐다.
연구소측은 "통일신라부터 고려·조선 시대에 걸쳐 존재한 도로 유구의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서성벽 보완 조사를 통해 신라 초기 토성의 축조 공법을 분석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연구소는 '계림∼월성 진입로, 서성벽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를 오늘 오후 2시 연구소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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