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 먹이사슬고리구조상 정부 대책은 '탁상공론'

처우개선 측면 긍정적…건설업계 체질개선 "글쎄"

#김 모씨는 지난 2011년~2012년 H 건설사가 발주한 건설현장의 수주에 성공한 B업체에서 1년간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다.

김씨는 20여년동안 미장공으로 근무하며 현장에서 한 동을 책임지고 일감을 깔끔히 마무리,  협력업체인 B사로 부터 베테랑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1년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만 썩어갔다. 협력사와 언약한 13만원은 구두 계약일 뿐. 협력사가 그에게 지불한 일당은 11만원에 불과했다. 월단위로 일당을 첫 정산받는 날  B사에게 약속이행을 강하게 촉구했다. 그러나 공무담당의 한 마디 "김씨 없어도 일할 사람 쎗어."

비오고 궂은, 공치는 날에는 일당도 없는 건설 일용직. 일당이라도 끊기면 생계가 막연한 건설 일용직에  '울며 겨자먹기'는 비단 김씨뿐만 아니다. 

김씨는 B업체에 고용된 모든 근로자들이 당초 계약한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지급받은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김씨는 동료와 함께 B업체와 계약이행을  촉구했다. 허나 B사는 이런 저런 핑계로 둘러대다가 폐업처리했다. 이윽고 그는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회신은 오지 않았다. 고의부도낸 기업에게는 노동청도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한국 산업혁명의 역사이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왔던 건설업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발주자의 사업진행을 위한 적정가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와 눈치보기 바쁜 수주업체들의 경쟁 과열로 부실시공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 권영순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특히 발주처의 과도한 '갑의 횡포'에 현장 노동자들의 생계문제와 더불어 인권침해까지 심심찮게 일어나며 건설산업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이러한 건설업계의 불공정 행위에 칼을 빼들고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처우개선에 나서며 건실한 건설업계 문화 만들기에 나섰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노사정위원회에 보고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 따르면 △ 건설근로자 퇴직공제금 인상 △건설 일용 취업지원 및 훈련지도 확대 △무면허 건설업자 소속 근로자 체당금 지급 등의 방안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과거 논의된 것들을 법제화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건설업계가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의 해결방안으로는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현장에서는 김씨를 밑바닥 '정'이라고 일컫는다. 발주처가 '갑'이고 원청업체가 '을'이라면 협력업체는 '병'  일용직인 그는 '병'이다.  건설업의 중층 하청고리를 간파하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의 진정한 대책이 나올 수 없다는 얘기다.

심규법 건설산엽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건설업계의 근본적 문제는 금전적 불합리성이 핵심 원인”이라며 “발주자가 입찰공고를 시작하면 수주를 하고자 원하는 업체들이 ‘일감을 얻고 보자’라는 생각에 제살깎기 경쟁을 벌이는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무리한 저가경쟁을 벌이다 보니 적정 공사비 마련이 어렵게 되고 그나마 책정된 공사비도 원도급자와 하도급자를 거쳐 근로자에게 전달되면서 가격이 점차 하락하는 등의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에 대해 심 연구위원은 “발주자로부터 수주를 받는다 해도 적정가격에 맞출 수 없는 상태에서 하도급 업체들이 수주한 업체에 또 다시 저가경쟁을 해야만 한다”며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결국 근로자들에게 들어오는 수중의 돈은 거의 없거나 임금체불이 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펜=조항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