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제 갈등이 고조…입장 난감한 국내 기업들
“정부와 기업의 정보 교류를 통한 의사 결정 필요”
[미디어펜=조한진 기자]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경제 패권 다툼이 가열되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의 눈치 보기가 심화하고 있다. 특히 기업 의사 결정에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운 G2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는 모습이다. 두 나라의 주도권 경쟁 사이에 낀 상황에서 전략적 선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 견제 강도를 높이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투자 전략 수립과 의사 결정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페이스북 캡쳐

최근 국내 주력 사업들은 미중 정부 정책 기조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LG와 SK의 배터리 분쟁이 대표적 케이스다. 700일 넘게 이어지던 양측의 배터리 공방은 지난 11일 종지부를 찍었다.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2조원의 합의금을 주는 조건으로 마무리 됐지만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양사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배터리 분쟁이 해결된 뒤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 산업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미 정부의 물밑 노력이 숨 가쁘게 진행됐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12일(현지시간) 열린 반도체 화상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웨이퍼를 들고나와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회의에 참석한 삼성전자 등 해외 기업들에 반도체 가치동맹(AVC)’ 참여와 미국 기업에 우선 물량 공급, 현지 투자 확대 등의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17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려는 삼성전자의 계획도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기존 공장이 위치한 텍사스 오스틴 등에서 조건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계 일부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미국 투자가 중국의 반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정치 문제로 미국과 각을 세우는 중국 정부가 국내 기업들에게 시설 투자 확대 등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 리스크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기업은 수익을 고려한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모두 연관된 문제라면 상황이 다르다”며 “한곳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사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고민은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과 중국 한 편에 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쪽의 요구를 들어주면 다른 쪽의 보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문제 뿐 아니라 정치, 외교와도 연결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 부담이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의 현 상황을 정부가 정확하게 파하고, 실시간 소통 시스템을 구축해 리스크를 최소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윤 전경련 산업전략팀 팀장은 “(미중 문제와 연관된 이슈는) 기업이 단독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정부와 기업의 정보 교류를 통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며 “정부는 기업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정확한 입장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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