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면제 여부, 핵심 쟁점' 재판부 "추상적 기준 제시하면서 예외 두는 것 적절치 않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선고 공판이 '각하'로 끝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이날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및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으로, 재판부는 일본 정부에 '국가면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
지난 1월 8일 났던 1차 소송(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4부-당시 김정곤 부장판사)에서는 국내에서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를 배척하는 판결이 났지만, 이번 2차 소송에서는 정반대 결론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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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되어 있는 위안부 소녀상. /사진=연합뉴스 |
국가면제는 일종의 국제관습법으로 '국내 법원이 외국국가의 소송 재판권을 갖지 않는다', '한 국가의 법원이 타국을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이는 일본의 반인도적 행위가 국제법 최상위 규범인 '강행규범 위반'이라는 지적과 충돌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하면 선고와 강제 집행 과정에서 외교적 충돌이 불가피하다"며 2015년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외교적인 요건을 구비하고 있고 권리구제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합의에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입장만 일방적으로 반영할 수 없다. 비록 합의안에 대해 피해자들 동의를 얻지 않았지만 피해자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고 일부 피해자는 화해치유재단에서 현금을 수령했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에 대한 법조계 평가 또한 엇갈린다. 결국 상급심인 대법원이 최종 판단해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부장판사는 이날 본보 취재에 "솔직히 국가 간 분쟁을 중재하는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 또한 국가면제 예외를 인정하는 것에 신중한 편"이라며 "ICJ는 2012년 '이탈리아 페리니 사건'에서 나치 독일의 행위에 대해 국제법상의 범죄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가면제(주권면제)가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당시 ICJ 소수의견에서는 다른 피해 구제책이 없는 경우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면제 원칙에 예외를 두고 피해자국 법원이 가해국가를 상대로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올해 우리나라 1심 재판부가 (비록 다르지만) 1차와 2차에 걸쳐 서로 엇갈린 결론을 낸 것은, 국제사회가 국제인권규범을 계속 수정해나가면서 생기는 파열음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나 일본 모두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을 계기로 탄생한 근대 주권국가 체제"라며 "국가의 법적 실체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면제'는 쉽사리 깨질 수 없는 국제관습법상의 법리"라고 강조했다.
일본계 기업 소송 대리를 다수 맡아온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최 모 변호사(45)는 이날 본보 취재에 "어느 한쪽이 고집할수록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가 될 것"이라며 "비엔나협약은 국내 재판 판결이 나왔다 하더라도 타국 재산을 현금화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최근 판결 2건이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낸 것인데 법원 내 기류 변화에 대해서 예단하기 어렵다"며 "이번 판결에서 유의할 점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화해치유재단이 세워져 피해자 상당수에 현금 지급이 이뤄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대체적인 권리 구제가 이뤄진 것을 또한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결국 대법원에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정치적인 선언으로 국한하느냐, 양국 정부가 합의로 완전히 인정하느냐에 따라 최종 판단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2차 소송 1심 판단에 대해 원고측인 위안부 피해자들은 즉각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항소 과정이 어떻게 이어지고 대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일본 정부는 재판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판결에 따른 대응을 전혀 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