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통합 논의, 명분 불구 '새정치'·'다당제' 신념 저버린 셈
   
▲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정치권에서 때마다 많이 나오는 관형사가 ‘새(New)’다. 여기서 파생된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는 아마도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특정한 시기에 한 번 이상 사용해봤을 것이다. 그만큼 정치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만, 그런 추구와는 달리 낡고, 고루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새’라는 관형사나 ‘새로운’이라는 형용사가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선거 직후다. 대체로 선거에서 진 자, 또는 그런 세력에서 많이 쓰지만, 이긴 쪽에서도 심심찮게 쓴다. 이겼다고 해서 자만하는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잘하겠다는 의미로 낡은 정치를 벗고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질 때 이런 관형사나 형용사를 많이 쓴다.

요즘에는 그리 많이 인용되지 않지만, 한때 정치인들이 늘 가슴에 새기고 머리 위 액자에 넣어서 간직하던 한자 성어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다. 중국 은나라의 시조인 탕왕(湯王)이 늘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세숫대에 새겨놓았다는 글귀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에서 유래된 글로, ‘날이 갈수록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정당 이름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 우리 글 ‘새’에 해당하는 한자어 ‘신(新)’이 첫 글자에 온 정당들이 부지기수인데, 주로 선거에 패하고 난 후 당명을 변경할 때 많이 쓴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반성과 사과이기도 하고 다짐이기도 한 셈이다.

‘새’라는 관형사로 재미를 본 정치인 중 한 명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전에 처음 뛰어들면서 올해로 꼭 10년의 정치 인생을 살아온 그는 출마 선언과 양보, 사퇴 등으로 특별한 정치 이력을 만들어내더니 2014년 ‘새정치’를 들고 나오면서 ‘진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당시 그가 추진하던 ‘새정치연합’은 당시 제1야당인 민주당과 통합하면서도 ‘새정치’를 그대로 가져갔다. 그뿐 아니라 ‘민주’보다 앞에 ‘새정치’를 넣고, 뒤에는 ‘연합’으로 당명을 마무리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누가 봐도 민주당을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저력을 드러냈다. 그리고 ‘새정치’는 안철수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러다가 2016년 제19대 총선 상황에서 민주당을 깨고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새정치’를 내세운 안 대표는 민주당 텃밭 호남을 사실상 싹쓸이하면서 38석을 얻어 원내 3당이 됐고, 국회 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안 대표는 ‘새정치’에 얹어서 ‘다당제’라는 또 새로운 정치 구도를 내세웠다. 우리 정치사에서 오랜 ‘양당 구도’에 대한 저항이었고, 국민들은 이 또한 안철수이기에 가능한 ‘새정치’라고 생각했다. 

여당인 새누리당,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제아무리 ‘꼬셔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 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나눠먹기식’ 국회를 지양하고, 양당에 끼어 버둥대는 민심을 의회로 전달하는 제3당의 존재감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그랬던 안 대표에게 더이상 ‘새정치’도, ‘다당 구도’도 없어졌다.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21년의 안철수는 제1야당이면서 거대 양당 정치의 한 축인 국민의힘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38석에 이르던 국민의당은 합당과 분당의 혼란을 거듭한 끝에 21대 국회에서는 비례대표 의원 3명만을 보유한 ‘꼬꼬마 정당’이 됐고, 정치적 존재감 자체를 상실한 안 대표는 스스로가 지향했던 국회 다당 구도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 국민의당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안철수 대표./사진=연합뉴스

그럼 안 대표는 왜 스스로를 ‘불신’의 정치인이 돼 가면서도 국민의힘과의 합당을 꾀하고 있는 것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이른바 ‘반문재인’ 세력을 규합해 내년에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청와대와 국회, 지방정부까지 거의 모든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민주당에 대항하고,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문’으로 뭉치는 모든 세력의 연대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기꺼이 정권 교체의 마중물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결국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야당 위에 우뚝 선 차기 대권 주자가 되고자 하는 것 아니냐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자신이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고, 하지만 거대 양당의 후보가 아니고는 결코 대권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상황의 한계를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고 있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추구했던 ‘새정치’의 가치도, ‘다당 구도’의 대의명분도 한낱 허상에 지나지 않고, 우리의 현실 정치에서는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기성 시스템에 편승해야만 한다는 ‘지고지순’의 진리를 깨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안철수 본인은 이런 의심이나 평가에 대해 억울할지 모른다. 나름대로 항변이나 해명도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소수의 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그가 어떤 식으로 해명을 하든, 어떤 이유를 들어 항변을 하든 허공으로 흩어지는 외침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혹 제1 야당의 당권을 쥘 수도 있고, 또는 유의미한 차기 대권 주자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설령 본인이 대권을 쥐지는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떤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2021년의 정치인 안철수’는 2011년에 돋보였던 신선함도, 2014년에 보여줬던 새로움도, 그리고 2016년에 얻어냈던 새정치의 바람도 잃을 수 밖에 없다. 그는 이미 기성의 노회한 정치인이 됐고, 거대 양당 구도에서나 달콤한 권력을 빨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이 돼 버린 것이다.

안 대표는 3일 한국정치평론학회 초청 토론에서 국민의힘과의 통합에 대해 “대선 때 단일후보만 선출하면 된다”고 얘기했다. 앞으로 그의 말과 행보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양당 체제는 바꿀 수 없는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을 보여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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