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우리 군이 처한 내부 상황은 특수하다. 사병은 전부 남성이다. 간부는 남성이 중심이되, 장교 일부와 부사관 준사관 일부가 여성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도 사병으로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었지만, 성범죄 피해자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 모 중사' 사건이 불거지면서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여성 부사관이 남성 부사관의 지속적인 성추행으로 괴로워 하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공군 군사경찰은 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축소·무마하려고 하다가 발각되는 일이 벌어졌다. 온 국민의 공분이 들끓자 현 공군참모총장이 물러나기에 이르렀다.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을까. 성범죄를 일소하는 군의 '미래 청사진'이 시급한 실정이다.
관건은 성범죄 관련 지침, 메뉴얼이 이미 있었지만 이것이 이번 사건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피해자 이 중사는 블랙박스 등 구체적인 물증을 제출했지만 군사경찰은 사건 발생 15일 만에 첫 조사를 진행했다. 가해자의 휴대전화 압수도 석달 만에 임의제출로 했다.
지난 2018년 초 국방부 성범죄 특별대책태스크포스(TF)는 성범죄 대응 메뉴얼을 구축하고 전담수사관 인력보강까지 권고했지만 이번과 같은 사건이 재차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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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는 지난 2018년 1월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근무여건 조성' 등 양성평등하고 가족친화적인 근무여건을 조성해 나가겠다며 '국방개혁 2.0' 개혁과제를 세운 바 있다. 본 이미지는 당시 국방부가 배포한 관련 카드뉴스 중 일부이다. /사진=국방부 제공 |
이로 인해 군 일각에서는 '즉각 조치하지 않는' 조직 내 폐쇄적 문화를 문제로 보고 있다.
군에서 성범죄 조사를 받기도 한 육군 예비역 K모 대위(여성)는 5일 본보 취재에 "군대 내 매커니즘은 부대 상황이나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지위 고하 여부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며 "가해자가 여성인 경우 매우 신속한 처리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피해자가 여성이라면 이번처럼 허송세월 늦장을 부리다 일을 그르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도 확인됐다시피 피해자 보호와 비밀보장, 가해자와의 완벽한 분리가 지켜졌더라면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까진 안 갔을 것"이라며 "피해자가 피해를 신고한 후 군 내 조직적인 무마 시도와 따돌림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현 제도적으로는 가해자-피해자 분리도 보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았다"며 "가해자 영장 청구도 늦었다고 들었고, 부대 구성원들이 성범죄 2차 가해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이 잡혀있지 않아 재차 2차 3차 가해를 가한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사건 발생 직후 두달간 청원 휴가를 다녀와 지난 5월 3일 복귀한 이 중사는 첫 출근 날부터 혼자 야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국방부 검찰단에게 "피해를 신고한 후 2주간 날짜 및 시간별로 구체적으로 뭘 했는지 적어내라고 했다"며 피해를 셀프입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군 내 갑질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가해자인 장 중사는 '도주 우려가 없다'는 사유로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한번 받았다.
조직적인 은폐와 회유 시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피해자의 생명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초동수사 부실과 조직적인 2차 가해, 메뉴얼 미준수 등 총체적 문제를 국방부가 어떻게 해결하고 완벽히 보완할지 주목된다. 추상과 같은 엄벌과 피해 예방 대책이 완비되어야 또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