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경의선숲길’이 폐선된 옛 철길을 걷기 좋은 도심 속 시민공원(市民公園)으로 꾸며, 서울 서북쪽의 새 명소가 되면서 특히 연남동 등이 ‘연트럴파크’로 각광받은 것처럼, 서울 동북쪽에는 ‘경춘선숲길’과 그 주변 동네가 트래킹족들이 몰려들며 새롭게 뜨고 있다.
경춘선(京春線)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7월 서울, 정확히는 옛 성동역(현 제기역 근처)과 강원도 도청소재지인 춘천을 잇는 철도로 개통됐다.
당시 대부분의 철도가 일제의 침탈(侵奪) 용으로 부설된 반면, 경춘선은 민족의 산업 육성을 위해 우리 민족자본으로 건설된 철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춘천 상인들이 중심이 된 번영회(繁榮會)에서 1926년 2월 ‘경춘철도 기성회’를 조직, 4년여의 공사 끝이 완공된 것.
서울을 뜻하는 ‘경’과 춘천의 ‘춘’자를 합쳐, 경춘선이라 명명됐다. 그 후 71년 동안 여객과 화물열차가 서울과 춘천을 오가며, 민족의 애환(哀歡)과 함께 해 왔다.
경춘선은 서울시가지 확장에 따라, 성동역에서 성북역(현 광운대역) 구간이 먼저 철거됐다.
이어 지난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전철화 사업 추진에 따라 철도 노선이 상봉동 쪽으로 바뀌면서, 기존 노선 중 광운대(光云大)역에서 구리시 갈매역까지의 8.5km구간이 폐선돼,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이 폐철길이 2016년 경춘선숲길로 거듭났다. 서울시는 지금의 전철1호선 월계역 인근 경춘철교(京春鐵橋)에서 서울시 경계인 ‘담터마을’ 구간 6km에, 숲길 공원을 조성했다. 경의선숲길과 달리 선로 원형을 보존하고, 정원과 산책로 및 문화공간을 만들어 2018년 개방했다.
서울시내에서 철길 원형이 가장 길게 남아있는 곳으로, 근대산업문화유산(近代産業文化遺産) 경춘선의 현장을 간직하고 있어, 찾는 사람들에게 옛 추억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5월의 봄날, 이 경춘선숲길을 걸어본다.
수도권전철 1호선 월계역(月溪驛) 1번 출구를 나와 소공원을 지나 길을 따라가면, 사거리 건너편에 월계보건지소가 보인다. 그 뒤, 월계사슴1단지아파트 단지내로 들어가 조금 더 가니, 바로 폐철길이 나온다.
경의선숲길과 달리 레일과 철도침목(鐵道枕木)은 그대로인 채, 걷기 좋게 멍석만 깔아놓았다.
조금 걸으면, 곧 경춘철교가 나온다. 유모차도 지날 수 있게 선로 옆으로 강철판을 덧대고 세운 안전 울타리 위에는 꽃들이 가득하고, 발아래엔 동부간선도로가 남북으로 달리며, 중랑천이 유유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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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춘철교/사진=미디어펜 |
경춘철교는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문화재적 가치 보존을 위해, 12개의 교각(橋脚)과 철로를 기대로 보전한 채 보행로를 조성하고, 철교 아래 중랑천 산책로와 직통하는 승강기가 있다.
철교를 건너자, 철길 오른쪽에 잣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오는 나무인 잣나무 숲이, 청량함과 시원함을 안겨준다. 숲길과 철길 사이엔 붉은 병꽃들이 반긴다. ‘레일 핸드카 체험장’도 보인다. 선로보수원(線路補修員)들이 레일 위를 달리는 무동력 이동수단으로, 기찻길 옆에 살던 어린 시절 많이 보던 것이다.
경춘선숲길 방문자센터는 열차 객차(客車)를 개조한 것이다. ‘KORAL’ 표시가 선명하다.
동일로를 건너는 지점에서 숲길이 끝난다. 길을 건너 조금 더 가면, 신공덕 폐역(廢驛)이 있고, 지하철 7호선 공릉역이 가깝다. 공릉동 ‘도깨비시장’도 멀지 않다. 철길 옆 축대에는 멋진 벽화가 그려져 있고, 그 위로도 꽃들이 무성하다.
철길 옆으로, 함께 가꾸고 나누는 ‘마음의 뜰’ 안내판이 있다. 주민들이 함께 가꾸는 참여 정원(庭園)으로 각종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 오랜만에 보는 섬초롱 꽃이 특히 반갑다.
공릉동의 주요 명소들을 알려주는 안내판도 보인다. ‘멈춤’이라고 쓰여진 건널목을 지나, 계속 길을 따라간다.
아파트단지 옆으로 폭포가 시원스럽게 쏟아진다. 경춘폭포(京春瀑布)란다.
폭포 옆에는 흰 나비날개 벽화가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포토 포인트’가 돼 준다. 구본준 작가의 ‘사랑의 날개’라는, 국내 최대 규모의 날개 부조인데 단청(丹靑)으로 색칠을 한 것이다.
그 오른쪽에서, 경춘선 ‘오픈갤러리’가 시작된다. 철길 옆 축대 벽을 이용한 열린 전시공간이다. 갤러리의 첫 작품은 옛 경춘선 기차표를 표현했다. 과거의 열차표가 사라지지 않고 현대로 오면서 문화플랫폼으로 바뀌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다음은 등대(燈臺) 벽화다. ‘그리운 등대’라고, 경춘선 철로의 그리움을 나타낸다. 역시 구본준 작가의 부조 위에 김영현 작가가 색을 입혔다. 옛 경춘선 증기기관차 부조도 구 작가의 작품에 최누리 작가가 색칠을 했다.
무명(武名) 작가들의 그림들도 잔뜩 걸려있다. 기획전시 ‘나도 작가전’이다.
철길 오른쪽에는 아기자기한 예쁜 가게들이 즐비하다. 숲길 덕분에 상권도 뜨고 있다. 장미꽃 터널도 보인다. 만개한 붉은 장미 사이로 걷는 사람들의 표정엔 즐거운 웃음이 가득하다.
오른쪽 아래, 6호선 화랑대역이 보인다.
철길 왼쪽은 ‘무지개공원’이다. 옛날 왕이 쓰던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병풍 조형물,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가득한 작품들이 이어진다.
‘솔밭근린공원’앞을 지나 조금 더 가니, 화랑대 삼거리다. 화랑회관 앞 말 탄 화랑(花郞) 동상이 활을 당기고 있다. 그 건너편 작은 공원에서 싸 가지고 온 점심을 나눠 먹는다.
여기는 ‘노원불빛정원’ 입구다. 옛 화랑대역 입구에 조성한, 빛의 하모니가 가득한 곳이다.
옛 증기기관차(蒸氣機關車)가 위용을 자랑한다. 그에 딸린 객차들이 여럿이다. 오른쪽에는 역사 모형도 있다. 이어지는 흰 꽃 너널을 지나면, 본격적인 화랑대 폐역 구간이다.
플랫폼에 ‘화랑대역’ 안내판이 아직도 선명하다. 앞 역은 성북, 다음 역은 퇴계원(退溪院)이다. 그 옆으로 열차가 서 있다. 그리고 각종 조형물과 아름다운 꽃들이 찾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트램’ 차량을 이용한 작은 도서관도 보인다.
드디어 옛 화랑대(花郞臺)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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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화랑대 역사/사진=미디어펜 |
등록문화재 제300호인 이 역사는 경춘선 개통과 함께 1939년 7월 준공됐다. 개통 당시엔 ‘태릉 정류소’라 했으나, 육군사관학교(陸軍士官學校) 인근이어서, 1958년 화랑대역으로 고쳤다. 경춘선 노선 중 서울의 마지막 역이었다.
벽돌 단층 건물로서, 일자형 공간 안에 대합실, 역무실, 숙직실이 있다. 대합실(待合室)에는 문틀에 매달려 있는 미닫이문이 설치돼 있고, 역무실과 대합실 사이 굴뚝은 겨울철 난로의 연통을 연결, 연기를 배출했으며, 숙직실에는 온돌이 설치돼 있다. 천정은 없고 바로 지붕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보기 드문 간이역(簡易驛)으로, 건립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역 구내엔 말, 얼룩말, 기린, 코끼리, 공작 등 각종 동물 모형과 화려한 꽃들이 어우러져, 사진 소재가 된다.
6호선 화랑대역으로 바로 갈 수도 있고, 인근 ‘노원둘레산천길’을 더 걸어도 좋다. 노원둘레산천길 3코스는 ‘에코둘레길’이다. 묵동천(墨洞川)을 따라 계속 걸으면, 중랑천과 만난다.
5월엔 ‘중랑장미공원’의 장미꽃 터널, 중랑천 고수부지의 유채꽃밭이 볼 만하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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