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 의결을 목표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강행 처리 속도전에 나서면서 언론·시민단체·학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 17일 국회 소관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에서 일부 내용을 바꾸는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해당 수정안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독소조항 핵심은 남아있어 큰 문제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수정안)을 이달 임시국회 내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표결 처리를 시도했으나,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 소집을 요구하면서 불발됐다.
지난달 27일 법안소위에서 국민의힘의 반대 속에도 민주당은 개정안을 단독 처리한 바 있다. 이번에도 진통 끝에 안건조정위로 넘겨졌지만 야당과의 합의 처리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18일 오후 최종 일정이 나오더라도 민주당은 안건조정위가 열리면 곧장 의결을 통해 문체위 전체회의로 재차 넘길 전망이다. 야당의 법안 처리 저지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국회 법사위 상정을 위한 숙려기간은 5일이다. 이를 감안하면 19일 내로 문체위 처리를 마쳐야 이달 25일 본회의 처리가 가능하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안건조정위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사실상 강행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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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가 7월 28일 "법안소위를 통과한 언론중재법의 상임위 전체회의도 속도를 내겠다"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겠다고 밝히는 모습이다. /사진=민주당 제공 |
민주당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행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는 핵심 내용이다.
특히 민주당이 내놓은 수정안에 따르면, 손배를 청구할 경우 청구 당한 기자·언론사가 자신의 고의·과실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해서 법률상 일반적인 손배 원칙에 어긋난다.
원래 명예훼손 등 민사 사건의 경우 피해를 입힌 사람이 입증하는게 아니라 피해를 받은 사람이 입증하라는게 대원칙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형평성에 전혀 맞지 않는 법안이다.
가해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의료·환경 분야와 언론계는 처한 상황이 완전히 다른데도, 민주당은 언론에 입증 책임을 부과하려고 하고 있다. 모든 보도에 대해 누가 어떻게 해서든 소송을 걸기 쉽게 만드려는 의도다.
개정안의 손배 청구 내용에 따르면, 손배 액수에 대한 법원 재판부의 재량을 제한할 수 있기도 하다.
또다른 문제는 민주당이 일명 가짜뉴스·허위조작보도를 처벌하겠다면서 이를 명시했는데, 그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해 '인위적 해석'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부장판사는 18일 본보 취재에 "법조계와 학계에서의 공통점은 소위 '가짜뉴스'에 대한 합의된 개념이 없다는 것"이라며 "속이려는 의도는 내면의 문제로 고의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보도의 의도성을 어떻게 측량할 것인지 법안 내용을 보면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안은 고의와 악의가 무엇인지는 명시했는데, 이는 매우 주관적이고 인위적인 정의"라며 "반복적인 비판 보도에 대해서도 '악의'라고 규정하는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나치 독일이나 중공 보다도 심한 파시즘적 광기"라고 평가했다.
한 현직 부장검사 또한 이날 본보 취재에 "수정안 내용을 봐도 누구나 쉽게 언론 보도에 대해 소송을 걸 수 있게 만들어놨다"며 "이렇게 되면 취재원에 대한 보호가 힘들어진다. 소송에 대응하려면 대외비나 다름 없는 내부 정보를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따라 취재원 비닉권이 형해화되어 언론사의 취재 활동 자체가 극도로 위축될게 뻔하다"며 "기사 의도나 기획 취지, 탐사보도 방향을 정할 때부터 언론사들이 알아서 사전 검열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한 "손해배상액을 매기는 걸 규정한 것도 법원의 재량을 제한한 것"이라며 "재판부가 손해 정도를 살펴보고 적절한 손해액을 부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소속 문체위원장인 도종환 의원은 18일 안건조정위 인선을 마무리한 후 최종 일정을 공고한다.
민주당이 원하는대로 속전속결로 법안을 처리할지 관심이 쏠린다.
선을 넘겨서 현 개정안대로 언론중재법을 통과시킬지, 모든 언론을 적으로 돌리는 등 그로 인한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무리한 입법에 따른 악영향은 전적으로 민주당의 책임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