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자율주행 등 핵심기술 상위권에 국내기업 전무... 정부 R&D지원 등 친환경에 쏠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올해 정부가 전략적 미래 먹거리로 미래자동차·반도체·이차전지·수소경제 등 신산업에 방점을 찍은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인공지능(AI)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래차 경쟁력의 핵심이 친환경 연료와 자율주행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는 ‘불균형’이라는 지적이다.

   
▲ 자율주행기술력과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이 접목된 트레일러./사진=미디어펜


정부는 ‘K-반도체’·‘K-배터리’ 전략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시스템반도체 공급망 구축, 전고체배터리를 비롯한 이차전지, 수소 상용화를 위해 막대한 투자계획과 세제혜택을 내걸었다. 

국내 완성차제조기업들도 향후 사업 초점을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에 맞췄다.

그러나 연구개발(R&D) 투자에 있어서 시대요구인 탄소중립 달성과 이를 위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의 이유로, AI를 비롯한 자율주행 기술보다 수소연료 개발과 수소 인프라 확장 등, 친환경 쪽으로 무게가 더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친환경·디지털기반 산업혁신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전환·에너지신산업 육성에 주안점을 두고,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 대비 5.6% 증액한 11조 8135억 원으로 편성했으며, 이 중 친환경·산업전환 분야가 5조 8274억 원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친환경·산업전환 분야의 주요 기술개발 지원에 소재·부품·장비(소부장) R&D 8410억 원, 기계장비산업 R&D 1581억 원, 전략핵심소재자립화 R&D 1842억 원 등의 대규모 예산이 반영된 반면, 자율주행 R&D에는 겨우 362억 원이 편성됐다.

   
▲ 에너지 분야 산업부 예산 반영 현황./자료=산업부


이와 동시에, 수소경제 구축 및 탄소중립 등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 4조 8271억 원 편성 등, 정부가 미래차와 관련해 AI 등 첨단기술개발보다 친환경 쪽으로 지원을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성차제조기업의 R&D 규모도 독일 폭스바겐 약 20조 원, 일본 토요타 약 12조 원에 비해 현대·기아자동차는 5조 원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는 2020년 약 224조 원에서, 오는 2035년 약 1370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달 시장조사 업체인 가이드하우스인사이트의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 순위 최상위권에는 웨이모·포드·GM크루즈·인텔 등 미국기업과 바이두 등 중국기업 및 독일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집계됐고, 국내 기업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 웨이모 자율주행 택시./사진=웨이모 제공


산업연구원의 분석에서도, 자율주행차 기술 수준을 미국 100점 기준으로 중국은 85점, 우리나라는 80점에 그쳤다.

민경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자율주행지능연구실 실장은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부품 국산화율은 99%에 이르지만,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의 국산화율은 38%에 불과하다”면서 소프트웨어(SW), AI 등에 대한 원천기술의 부족을 지적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정보통신(IT) 서비스 강국이지, IT기술·생산 강국이 아닌 것처럼,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원천기술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일반 완성차 제조분야에서는 선진국 수준에 근접했지만,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미국·독일·일본 등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기술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정부가 과감한 정책 개선을 통한 R&D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개발이 이뤄지려면 결국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선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등 과감한 세제혜택이 지원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 5년간 민간 R&D 투자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는 대기업의 R&D 부진과 정부의 낮은 R&D 지원 수준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한경연이 지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민간 기업 R&D 투자의 연평균 증가율을 5년 단위로 비교해본 결과, 2019년 기준 민간 기업 R&D 투자액 중 대기업 비중은 76.7%로 상당 부분을 차지했는데, 최근 5년간 대기업 R&D 증가율은 직전 5년간 연평균 증가율 14.1%의 절반 수준인 7.3%로 둔화된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즉 대기업이 민간 R&D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이들의 R&D 투자에 따라 전체 민간 R&D의 등락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한국은 대기업 대 중소기업 R&D 정부지원의 격차가 24%가 나타나는 반면, 주요 5개국(G5)은 이 차이가 4%에 그쳤다”면서 “중소기업 R&D 투자 세액공제율 25%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대기업의 경우 2013년까지 3~6%였던 세액공제율이 2018년에는 0~2%로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심현철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아직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AI 개발자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AI 관련 인재 양성 및 실증화 등을 위한 R&D 지원을 통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혀나가야 하는 더딘 길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앞당겨, 나중에는 추월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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