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 독과점 우려로 현대중공업에 지분 매각 요구
미국, 삼성전자에 반도체 재고·판매량 공개 압박
중국,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M&A 반대 분위기
특허 괴물들, 해외 진출 국내 기업 상대 소송 남발
국내선 기업 규제법 생성…망신주기형 국감 연례행사
황용식 교수 "정부·국회, 기간산업 인식 너무 안일해"
[미디어펜=박규빈 기자]한국 기업들이 해외 당국의 규제와 특허 법인들의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안방인 국내에서도 정부는 반기업·반시장적 입장을 취하거나 수수방관하고 있고 법·제도는 기업과 기업인들을 옭아매고 있어 기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 현대중공업 도크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


◇EC "현대중공업, LNG선(船) 시장 독과점 우려…지분·사업부 팔아라"

28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 작업이 유럽 집행위원회(EC)의 기업 결합 심사 지연 탓에 3년째 답보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전 세계 LNG선 70% 가량을 현대중공업이 제작하게 돼 사실상 독점 상태에 빠진다는 게 EC의 판단이다. EC 기준 시장 점유율 40%를 넘을 경우 독과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현대중공업그룹에게는 독과점 문제 해결에 대한 뾰족한 수가 없어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독과점 우려 해소 차원에서 현대중공업그룹은 LNG 운반선 건조 기술을 중소 조선사에 제공함과 동시에 수년간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방안을 현지 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지나 EC는 지분·사업부 매각을 요구하고 있다.

합병 심사를 진행 중인 EC가 쉽사리 허가를 내주지 않는 이유는 선사·선주가 많은 유럽 지역 특성 상 초대형 조선사가 생겨나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당초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채권단인 한국산업은행이 체결한 M&A 계약의 만기가 오는 30일이다. 당초 인수 시한은 지난 6월 말까지였으나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3개월 미뤄졌다. 따라서 인수 시한이 재차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 반도체 소재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백악관 "삼성전자, 반도체 기밀 내놔라"

국내 최대 기업 삼성전자는 미국 백악관의 '선 넘는' 요구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지나 라이몬도 연방 상무부 장관이 지난 23일 백악관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인들을 불러모아 반도체 재고와 판매 관련 정보를 45일 내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 중에는 삼성전자 외에도 △애플 △글로벌 파운드리 △마이크론 △TSMC △인텔 등 세계 유수의 반도체 회사들이 포함돼 있다. 정보를 제출하면 반도체 공급망 투명성을 제고해 어디서 병목현상이 발생하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미국 정부의 명분이다.

그러나 극비 보안 사항으로 분류되는 영업 비밀이 다른 업체로 유출될 경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 치명타로 작용할 여지가 있어 난감해 할 수 밖에 없는 시점이다. 반도체 재고량과 판매량은 반도체 가격 결정 요소로 작용할 공산이 큰 만큼 가격 협상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일부 외국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M&A 탐탁찮게 여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합병 승인을 두고도 해외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심사 장기화에 대한 설명자료'를 통해 "해외 주요국 경쟁 당국 심사는 아직 진행이 많이 된 건 아니나 실무상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소개했다.

공정위는 어느 나라 규제 기관이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는지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시장총국)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회사의 중복 국제선은 총 67개로, 노선별로는 △미주 6개 △유럽 6개 △중국 17개 △일본 12개 △동남아·동북아 24개 △대양주 1개 △인도 1개로 집계된다.

업계에서는 일본이나 중국이 양대 항공사 통합에 어깃장을 놓을 것으로 본다. 한편 일본은 항공자유화조약(Treaty on Open Skies)에 가입한 상태이고, 중국은 산둥·하이난 2개성에 대해서만 해당 조약을 적용한다.

이처럼 중국 정부는 항공시장에 대해 폐쇄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할 경우 자국 항공사들의 파이가 작아질 것을 걱정한다고 볼 수 있다. 노선 조정안을 꺼내들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따라서 중국 시장총국이 난색을 보였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미국 특허 괴물들 "일단 찌르고 보자"

한국 기업을 노리는 '특허 괴물'들의 소송 남발도 끝이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 5년 간 413건의 특허 소송에 시달려오고 있다. 이는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전체 707건 중 58.4%를 차지하는데, 특허자산관리업체(NPE)들이 무더기로 제소한 탓이다. 

LG전자·한화‧현대자동차 등 국내 상위 20개 기업 또한 미국 현지에서 168건의 특허 송사에 휘말려있는 상태다. '잘 나가는' 국내 중소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NPE들이 마구잡이식 소송을 내는 건 기업들이 값비싼 법률 비용을 부담하느니 합의금을 지불하고서라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때문에 우리 정부가 관심을 갖고 기업들에 대한 법률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국내 기업 '실드' 안 쳐주고 실드로 쳐버리는 정치권··기관들

국내에서도 기업과 기업인들을 옥죄는 게 다반사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올해 초 산업안전조치 위반에 최대 징역 10년6개월을 선고하도록 권고했고,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현장 근로자 사망 시 기업 대표에 대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와 비슷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도 28일 이날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됐다.

국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반시장·반기업적 논리에 매몰돼 있는 모양새다. 한 예로 다음달 1일부터 3주간 진행될 국정감사에는 대기업 경영진이 줄줄이 불려나갈 판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과 김장욱 이마트24 대표에게 최근 삼성전자 갤럭시 워치4와 버즈2를 편의점에서 판매해 논란이 일었던 국민지원금 사용처 정책 취지 훼손에 대해 질의할 예정이다.

환경노동위원회는 당초 △정의선 회장 △최태원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정몽규 HDC 회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해 소환하고자 했으나 망신주기식 대기업 총수 군기 잡기에 부르느냐는 재계 반발에 물러섰다.

이처럼 국내 법과 제도, 행정마저 기업 보호가 아닌 '배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기업 경영하기 좋은 환경 조성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 수년간 정부 정책 기조를 보면 기업 병폐와 구조적 문제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국익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국적 항공사 통합 문제도 공정위가 주체가 돼야 하는데, 입도 뻥긋 않고 다른 나라 입장만 살피면 결국 불발되거나 사모펀드나 외국 항공사가 헐값에 사가는 불행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황 교수는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정부 당국과 정치권의 인식이 너무나도 안일하다"며 "해외에 나간 우리 기업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따르지 않는다면 국부 유출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