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희연 기자]12.12 군사 사태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억압 등의 과오와 함께 대통령 직선제 수용, 북방정책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으로 새로운 시대의 지평을 넓혔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영면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가 노 전 대통령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도록 결정한 것을 두고 일부 시민단체와 진보진영 정치권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일 직접 빈소를 찾진 않았지만 "과오도 적지 않지만 성과도 있다"고 추모했고, 정부는 이날 노 전 대통령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노태우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 쿠데타 등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정책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성과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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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를 닷새간의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한 지난 27일. 대구 달서구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마련된 국가장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2021.10.27./사진=연합뉴스 |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전하며 "(문 대통령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고 말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9시쯤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고인에 대해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고 이젠 역사에 기록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방명록에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구했던 마음과 분단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억합니다"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도 이날 오후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빛과 그림자가 있는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다 한 점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내란혐의 등으로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탓에 국립묘지 안장은 불가능하지만 정부는 재임기간 동안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여러 공적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5.18 관련 단체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는 "그런 이유라면 전두환은 어떻게 평가할 거냐"며 반발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지난 27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광주지역 의원 전원(민형배, 송갑석, 윤영덕, 이병훈, 이용빈, 이형석, 조오섭)은 성명서를 통해 "역사적 단죄가 끝나지 않은 노태우의 국가장을 반대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 장례를 '국가장'으로 결정한 정부에 "매우 아쉽고 안타까운 결정"이라고 평가하며 "(노 전 대통령은)5.18 민주화운동을 총칼로 무참히 학살했던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역사적 단죄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가장의 예우는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광주광역시(시장 이용섭)와 광주광역시의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광주시는 고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기간에 국기의 조기 게양 및 분향소 설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시는 "고인은 5.18 광주학살의 주역이었으며, 발포명령 등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생전에 진정어린 반성과 사죄, 그리고 5.18진상규명에 어떠한 협조도 없이 눈을 감았다"며 추모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5·18기념재단과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 4개 관련단체들도 이날 성명을 내고 "그는 광주 시민과 국민에게 단 한번도 직접 사죄하지 않았다"며 "국가장은 정부가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고 정치적 판단도 가능하지만 국가의 헌법을 파괴한 죄인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도 이날 "오늘의 결정이 피로 이뤄낸 민주주의에 또 다른 오점이 될까 우려스럽다"며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다. 전두환 씨에게는 어떤 잣대로 판단할 것인지 국민들이 묻고 있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정의당은 28일 논평을 통해 문 대통령이 전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한 것을 언급하며 "'국가장'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선거용 이벤트로 삼을 일이 아니다. 노태우 국가장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노태우의 ‘공과 과’를 논한다 해도 그가 저지른 죄과를 볼때 ‘국가장’은 심히 잘못된 결정"이라며 "정부의 노태우 국가장 결정은 보수층 일각의 표를 의식한 일이란 합리적 의심이 든다. 국가장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선거용 이벤트로 삼을 일이 아니다"고 문 대통령을 겨냥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이 과오도 적지 않지만 공이 있다'고 말한 것을 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얼마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평가한 것과 지금이 무엇이 다르냐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타나났다.
앞서 지난 19일 윤 후보는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한 것은 정략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며 "이번 결정으로 광주의 희생자들과 시민들이 온전히 사과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된 점이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어제는 전두환 비석을 밟고 오늘은 노태우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여권 대선 후보의 모습에도 적잖게 실망했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이 생전에 5.18 희생자들과 광주시민에게 직접 사과한 적이 없다. 과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가 전재되었을때만 공도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여권 내부에서 조차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을 두고 최소한의 예우'라는 입장과 '정치적 판단'이라며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를 둘러싼 후폭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디어펜=이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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