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기에 '최초'가 될 여지 많아...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자세 가져야
   
▲ 정영지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생

주요 협상 테이블에 하이힐이 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까지. 바야흐로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더 이상 우리를 한계 짓지 못하는 시대가 온 듯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기회의 문은 분명 열린듯한데 정작 그 문에 입성하는 여성의 수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여성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 되었을 때, 비판적 여론은 후보의 성별을 공공연하게 문제 삼았다. '가정을 꾸려보지도 않은 처녀가 무얼 알겠냐.’라는 충격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적 비극에 눈물을 흘린 대통령을 두고 언론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에서 나온 행동’이라 표현했고, 소통능력이 문제되자 남성이 주류를 이루는 각료들과 허심탄회한 술자리를 갖지 못해서가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대통령의 지지 세력은 이에 적극적인 논리로 맞서는 대신 여성스럽지 않은 측면을 찾아 부각시키기에 급급했다. 암탉의 울음이 어떻고 하는 말이 들리는데도 여성주의 진영은 손을 놓고 있는 듯 보였다.

여성 기업가들의 경우는 또 어떤가? MCM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 낸 김성주 회장에게 쏟아지는 일반의 평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성공한 기업가인 셰릴 샌드버그는 강연을 통해 자신이 수도 없이 '기가 너무 세다(too aggressive)’는 평가를 들어왔다고 고백했다. 큰 성취를 이뤄낸 남성 기업가들에게 보내는 '배포가 크고 신념이 굳다’라는 평과 사뭇 이질 된 느낌은 필자만의 것일까?

   
▲ 박근혜 대통령./사진=연합뉴스

한 연구에 따르면 성과물에 있어서는 남녀가 동등한 평가를 받는 반면 그에 따른 호감도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일을 열심히 잘하거나 앞에 나서서 조직을 이끄는 여성들은 어딘가 이기적이고 독단적일 것 같다는 편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는 위대한 일에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투신하는 여성에 대해 이중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쯤 되면 아직까지 여성성을 리더십에 십분 활용하는 이가 별로 없다는 데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성공한 여성 지도자들의 다수가 '여자인데 여자 같지 않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런 편향된 사회적 평가에 주눅이 들어 뒤로 물러선다면 그 자리는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손을 드는 남성들로 채워질 것이다. 호감 가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순종적인 구성원의 역할에 안주한다면 여성 리더들은 끝끝내 기 센(Bossy) 여자로 불릴 것이다. 이렇게 많은 여성 인재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만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차세대 여성 지도자를 꿈꾸는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걸까? 필자는 제도에 대해,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물론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아예 무시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우리가 여성임을 절실히 깨닫게 만드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야말로 새로운 여성 리더의 이미지를 창조할 열쇠를 쥔 세대라는 점을 역설하고 싶다. 현실은 직시하되 결코 좌절해서는 안 된다.

전향적으로 우리 주변을 바라보자. 어떤 일에 '처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이다. 필자는 필자가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최초’의 타이틀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짜릿함마저 느낀다. 우리는 얼마든지 역사가 될 수 있다.

겸손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지나치게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 너무 앞서 결혼과 출산, 육아를 걱정하는 것 모두 여성들 내부의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 스스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놓고 사회 구조가 여성에게 차별적이라는 불만만 갖는 것은 모순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후배 세대를 위해서라도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자세가 절실하다. 뒷짐 지고 서서 문제를 비판하기 보다는 바로 내가 그 편견을 깨는 첫 사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젠더 문제의 해결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가 우리의 다름이 충분히 평가받도록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어필할 때 선한 변화가 시작 될 것이다.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가담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작은 도전들이 모인다면 분명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확신에 찬 언행과 멋진 패션 감각으로 무장한 채 미지의 영역에 당당히 도전할 여성 리더들의 탄생을 기대한다.

“And I hope that you- yes, you- have the ambition to lean in to your career and run the world. Because the world needs you to change it. Women all around the world are counting on you."/정영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생 

(이 글은 자유경제원 홈페이지(www.cfe.org) '젊은함성' 게시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