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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곤 21C미래교육연합 대표 |
세간에 떠돌던 이야기가 사실이었다. 학생들 책값의 절반을 교사들에게 채택비로 준다는 충격적인 뉴스 말이다. 어린이가 보육교사에게 폭행을 당하고 미대사가 테러를 당하는 등 워낙 큰 이슈들이 계속 터져 나오는 시점이라 이 사건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중·고등학생들이 공부하는 국·영·수 주요과목 교과서의 가격은 대략 7천원에서 1만 2천 원에 이르며, 그 외의 교과서는 수요량에 따라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의무교육인 중학교까지는 전액 국가가 책을 사주는 것이고, 고등학교의 경우도 학부모부담은 20%가 안 되어 교과서 값은 거의 대부분 정부 세금이라고 봐야 한다.
필자가 지난 2013년 가을에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학생 수 1천명이 되는 고등학교에 거금 1천만 원의 국어교과서 채택 로비를 하는 출판사가 있다는 것이다. 얼른 계산해보니 1만 원짜리 교과서 1천권을 공짜로 주는 셈, 그래서 책장사가 뭐 남는다고 그러냐고 반문했더니, 교과서는 그냥 줘도 나중에 교과서 값의 두 배에 이르는 참고서와 문제집 등을 팔면서 충분히 이익이 남는다는 설명을 해줬다. 정부가 대주는 교과서 값에 학부모는 두 세배에 이르는 참고서와 문제집 값을 또 내야 한다. 제법 큰 시장임에 틀림없다.
주요과목인 국영수의 경우 1년에 두 권 나아가 3년간 여섯 권의 책을 사봐야 하고, 학기마다 참고서와 문제집을 따로 판매하는 출판사와 대리점 입장에서는 채택 권한을 갖고 있는 교사들이 소위 ‘갑’이다.
이는 제약회사 직원이 의사들에게 자기네 회사의 약을 처방전에 써달라고 로비를 하는 것과 형식은 같지만, 받는 대상이 민간인이 아닌 공직자라는 점에서 교과서 채택 로비는 훨씬 중대한 범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이러한 범지를 막지 못했고, 또 학교와 교사들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한 꼴이지만 자성의 목소리나 대안마련은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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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수 1천명이 되는 고등학교에 거금 1천만 원의 국어교과서 채택 로비를 하는 것은 교과서는 그냥 줘도 나중에 교과서 값의 두 배에 이르는 참고서와 문제집 등을 팔면서 충분히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로 출판사와 교사간의 검은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그렇다고 검인정교과서 제도를 없애고 국정교과서로 전환할 수는 없다. 검인정 교과서의 가장 큰 장점은 출판사마다 우수한 집필진을 확보하여 보다 더 나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이것이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점이다. 누구든 자유롭게 만들고 학교에서 많이 채택하면 돈이 되는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교과서 채택 비리를 막으려면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권한을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연수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 32조에는 학교운영위원의 기능으로 ‘교과용 도서와 교육 자료의 선정’을 분명하게 명시해 놓았다. 그 외에도 학운위는 학교교육과정의 운영방법 등을 심의한다.
그런데 학운위의 심의는 여전히 형식에 그치고 있다. 학교측에서 심의자료를 만들 때 전문적이지 않은 학부모위원과 지역위원을 위해 충분히 배려하고 만들어야 하는데 심의 자료 자체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 교육과정 심의와 교과서 선정 등에 대해 한 쪽짜리 용지에 연간 수업일수, 방학일수와 수학여행 등의 일수를 적어 놓고 심의해 달라고 한다. 대다수의 학운위 위원들은 그게 다 인줄 알고 원안대로 통과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교과서 채택 비리 같은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란 꿈도 꿀 수 없다.
학운위의 교과서 심의는 이렇게 진행되어야 한다.
먼저 학교별 담당교과 교사들은 출판사별 교과서를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채점표와 함께 회의록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교과목별로 종합하여 학교에서는 심의자료를 만들어 학운위에 제출한다. 학운위는 학원강사나 교수 과학자 등 전문지식을 갖춘 학부모들을 ‘교과서 선정 심의 소위원회’로 만들어 사전에 심의하게 한다.
정부는 교과서 심의에 관한 정보를 사전정보공개 대상에 포함시켜 학교별 홈페이지에 공시하고 학부모와 외부 기관에서 이를 열람하도록 한다면 부정비리는 근절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학교운영위원 대상 전문 연수가 필요하다. 현재의 연수는 교육감 축사, 시장·국회의원 격려사 그리고 비싼 밥 먹고 공연하나 보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교육의 공급자인 교육부나 교육청 학교관계자들은 수요자인 학부모들이 교육정책에 시시콜콜 간섭하기를 꺼려하고 자세히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필자도 6년간이나 학교운영위원을 해 보았지만 그 때는 잘 모르고 끝나고 나서 깨달은 게 훨씬 많다. 그것도 교육개혁운동에 뛰어 들어 피땀 흘린 결과이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들이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연수를 통해 그 역할과 권한 그리고 책임을 알게 된다면 학교교육 정상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 국가단위의 학교운영위원 연수 전문기관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조형곤 21C미래교육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