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한국인의 DNA다. 유전자는 회귀본능이 있다. 한국현대사는 이 가난한 DNA를 유지하려는 세력(이른바 ‘깡통 진보’다)과, 그것을 끊어내려는 세력의 싸움이다.” 소설가 남정욱이 전에 조선일보 칼럼에서 밝힌 통찰인데, 분명 우리에겐‘평등한 가난’ 속의 조선왕조로 되돌아가려는 집단정서가 존재한다. 그래서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위대한 가치를 모르며, 1960~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연신 깍아내린다. 놀랍게도 그게 요즘 지상파 TV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당신은 선뜻 동의하겠는가? 기형적인 그 정신구조는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숨은 힘인데, 그걸 밝히는 조우석의 글을 상, 하 두 차례로 나눠 내보낸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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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문화평론가 |
‘한국인의 가난DNA’에 대한 소설가 남정욱의 통찰이 퍼뜩 생각난 건 KBS가 지난 2월 초 방송한 다큐멘터리 ‘광복70주년 특집 뿌리 깊은 미래 1편 - 생의 자화상’ 때문이다. 이 프로는 방송 직후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지만, 문제의 핵심은 따로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물론 역사왜곡은 명백하다. 이미 지적된대로 이 다큐는 대한민국 건국의 가치를 부정하는데 몰두했다. 방송 60분을 통틀어 ‘건국’이라는 표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언급도 없으며, '대한민국'이라는 표현도 없다. 이에 대한 비판은 KBS 내부에서도 나왔다. KBS공영노동조합 성명서는 훌륭한 문제제기였다.
“피땀 흘려 가꿔온 대한민국의 존재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광복 70주년 특집이란 타이틀 아래 방송한 의도가 무엇인지 이를 기획한 제작진과 게이트 키핑을 담당해야할 경영진에게 묻고 싶다.”
그 직후 이 다큐의 스크립트를 섬세하게 검토해봤다. 실은 거의 매 한 줄마다 ‘폭탄’이었다. 6.25전쟁 직후 군 작전권을 미군에게 넘긴 것에 대한 왜곡, 흥남철수 때 미군에 의한 원폭 투하 소문에 대한 과장과 거짓 선동은 말할 것도 없다. 그걸 포함해 반미, 반제, 반대한민국 코드가 방송 60분을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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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가 방송했던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는 반시장적인 가난DNA를 부추겼다. 미군이 없고, 외세도 없는 우리민족끼리 살자는 반문명적, 반시장적 자폐적인 다큐였다. 얼치기 좌파적 민중 평등 민족주의를 찬양하고 있다. 퇴행적인 다큐였다. /KBS방송 화면 캡처 |
하지만 눈과 귀에 정말 거슬렸던 건 ‘한국인의 가난 DNA’였다. 정신 나간 담당 PD의 머리와 가슴엔 그 가난 DNA가 짙게 깔려있고, 이걸 기초로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이다. 즉 가난한 평등 속에서 살았던 조선왕조 시절이 얼마나 평화롭게 아름다웠는가에 대한 자폐적 만족감이 요지부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역사 왜곡은 그런 기형적 의식구조의 부산물일뿐이다.
조선왕조가 평화롭게 아름다웠다고 좌파들은 믿는다
사실 필자는 이 PD가 1980~90년대 어떻게 성장하고 대학을 다녔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옛 동영상 이미지를 다시 주물러 시청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심어주려 했는지 의중(意中)도 읽을 수 있고, 옛 가요를 적절히 배치해 좌파 감상주의를 쥐어짜내려는 장난도 대강은 파악된다.
고약하게도 그는 그걸 고도의 정서적 터치로 끌고 갔다. 이 프로그램의 그런 의도는 대본보다 행간과 이미지에 교묘하게 스며들어 있다. 초장부터 그러하다. 다큐는 시작 직후 30초 동안 서울 광화문의 야경과 세종로 주변을 짧게 스케치해 보여준다. 그 뒤 무려 3분 가까이 시인 정지용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이동원-박인수의 노래 ‘향수’를 나른하게 깔아준다.
화면은 벌써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새참을 나르는 순박한 아낙네, 느릿느릿하면서도 평화롭게 도리깨질을 하는 농부로 흘러간다. 이쯤 되면 시청자들의 마음은 벌써 조선왕조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조선적인 너무도 조선적인 풍광에 젖어든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구불구불 논두렁 사이로 논일을 하다가 곰방대 담배를 피우는 베잠방이 차림의 농부가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멀리선 멍멍이 짖는 소리가 꿈결처럼 들린다. 건국 이후 부국(富國)으로 일어선 대한민국의 역동적 이미지는 자취도 없다.
남은 건 그저 낡은 조선, 그리고 가난의 땟국인데, 그게 아름다운 과거로 포장돼 당신의 뇌리에 반복해 심어진다. 그렇다. 이 프로그램은‘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 옛날의 추억을 시청자들에게, 산업사회의 한 복판을 사는 21세기 국민들에게 쥐어짜듯 강요하는 게 전부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 옛날의 추억?
PD의 의도란 이렇다. 미군이 없었고, 외세도 뭐도 없이 ‘우리민족끼리’ 살았던 그 시절은 얼마나 훌륭했던가? 그걸 은연중 드러내는 것이다. 가난 DNA의 퇴행적 의식구조인데, 실은 너무도 볼썽사납다. 얼치기 좌파와 자폐적인 마인드로 가득하니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허구적 세계다.
그래서 이참에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한국사에 그런 ‘역사의 에덴시절’이 존재했던가? 부모와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다고 당신은 믿는가? 정지용이 노래했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
그건 문학적 환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못난 PD의 머릿속에서 그게 '불멸의 한국사 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르크시즘의 원시 공산사회와도 꼭 닮은꼴인데, 좌파 이념이 만들어낸 역사의 팬터지일 뿐이다. 옛 시절로 돌아가려는‘가난 DNA’의 필사적인 작동은 이토록 끈질기고 집요하다.
건국과 부국의 큰 이름인 이승만-박정희가 높이 들었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의의 깃발을 내리고, 대원군 식의 시대착오적 쇄국이 재등장해야 직성이 풀릴까? 그게 잠깐 모습을 바꾸면 좌파의 민중주의와 평등주의 그리고 민족주의 정서로 모습을 드러난다는 걸 저들은 알까? 그래서 한국은 여전히 좌파 600년, 우파 60년이다. 가야할 길이 그만큼 멀다.
이상 필자의 지적은 오버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뿌리 깊은 미래’인데, 대한민국의 미래는 건국 이전으로 돌아가야만 찾을 수 있다고 하는 세계관이 다큐 마무리에서 다시 드러난다. 나레이션을 맡은 여성의 유치찬란했던 멘트를 반면교사 삼아 다시 들어보자.
“다시 걷고 싶은 시간 하나 있다. … 잊히지 않는 기억 하나 있다. 꽃구름처럼 아름답지만 닿지 않는 기억. 가슴에 박힌 사람 하나 있다. 투박하지만 하늘빛처럼 말간 마음 가진 사람. 가슴에 매달고 살아온 시간과 기억과 사람. 그것이 우리의 뿌리였다.”
결국 이 다큐는 논란 끝에 본래 예정됐던 3~4회분을 못 채우고 2회 분을 내보내는 걸로 조기 종영됐다. 천만다행이지만, 그래도 미덥지 못하다. 이런 3.5류의 다큐를 내보내는 KBS 내부의 풍토는 물론이고, 지상파 방송 전체의 기형적인 의식구조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 참담한 실상을 다음 회에 지상파 방송의 주요 프로그램 분석을 통해 재확인해보자. /조우석 문화평론가
(이 글은 '굿소사이어티' 이슈레터에 실렸던 필자의 글을 수정 보완했음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