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경기도가 조성한 ‘경기옛길’은 조선시대 한양(漢陽)과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6개 도로망(육대로)을 역사적 고증(考證)을 토대로 재현, 지역 문화유산을 도보길로 연결한 역사문화탐방로다.
실학자 신경준 선생의 역사지리서 도로고(道路考)에는 육대로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를 토대로 새롭게 조성한 길이 바로 ‘경기옛길’이다.
‘삼남길’, ‘의주길’, ‘영남길’, ‘평해길’, ‘경흥길’ 및 ‘강화길’로 나뉜다.
이 중 평해길은 한양에서 강원도(江原道)로 가는 길을 복원한 것이다. 구리시, 남양주시 및 양평군을 지나는, 총 125km의 장거리 트래킹 코스다.
평해길 중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은 팔당호(八堂湖)와 어우러진 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다.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서 시작,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인 양수리를 지나 신원역까지, 총 15.2km 길이의 코스다.
한편 양평군(楊平郡)이 개발한 ‘물소리길’ 역시, 남한강과 북한강의 ‘맑은 물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아우른 길이란 뜻을 담고 있다.
물소리길 1코스는 경의중앙선 양수역에서 신원역에 이르는, 8.3km의 ‘문화유적(文化遺蹟)길’이다. 이 구간은 평해길과 물소리길이 서로 중복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길을 따라 양수역에서 시작, 한음 이덕형 신도비와 몽양 여운형 생가를 거쳐 신원역까지, 8.3km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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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평 '물소리길' 중 가정천변길/사진=미디어펜 |
양수역 2번 출구에서 도로를 건너 오른쪽으로 간다. 골목 안 양수리(兩水里) 성당이 보인다.
곧 가정천(柯亭川)을 만난다. 가정천은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에서 발원, 양수리에서 남한강으로 합류하는 5.7km 길이의 지방하천이다.
오늘 코스의 3분의 2는 이 가정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가정천 물소리를 들으며 걸어보자.
조금 가면, 오른쪽으로 하천을 건널 수 있는 ‘용담교’가 나온다. 난간도 없고 좌측 1차선이 차도, 우측 1차선은 인도인 간이 콘크리트 다리다. 이 동네 용담리(龍潭里)는 마을의 큰 늪에 용이 산다는 전설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오른쪽 농기계수리센터 앞을 지나, 천변을 계속 따라간다.
잠시 후 보이는 ‘양수힐링센터’는 요양원(療養院)이다. 그 앞을 지나니, 이제까지 가는 실개천이던 가정천 폭이 갑자기 넓어진다. 물을 가두는 보(湺) 같은 돌무더기가 보인다.
오른쪽 논에 고인 물웅덩이가 얼어붙었다. 이제 11월 말인데, ‘살얼음’ 수준이 아니다.
비닐하우스 ‘딸기 팜카페’와 주말농장(週末農場)을 지난다. 왼쪽 하천 너머 산기슭에 천주교 묘지가 보인다.
길 왼쪽에 멋진 나무들이 도열했다. 편백나무 가로수길이다. 앙상한 나목(裸木)과 대조적으로, 하천 곳곳에는 ‘물냉이’들이 새파란 군락을 이룬다.
‘부용1교’에서 잠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정창손 선생 묘가 있다.
정창손(鄭昌孫)은 조선 세종 때부터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영의정을 2번 역임한 문신이다. 청백리(淸白吏)로 유명했으며, 시호는 ‘충정’이다.
고려사’, ‘세종실록’ 등의 편찬에 참여했으나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 고변, 연산군 생모 윤씨의 폐출 관련으로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부관참시’를 당하는 등, 정치적 곡절도 겪었다.
선생의 묘역석물(墓域石物)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5호로 지정됐고, 인근에 신도비도 있다.
묘역 왼쪽 길로 조금 가면, 경기도기념물 제96호 이준경 선생 묘가 있다.
이준경(李浚慶)은 조선 명종 때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명종이 죽자 선조를 왕으로 세우고 보필했다. 이 때 기묘사화로 죄를 받은 조광조(趙光祖)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을사사화로 억울하게 유배생활을 한 노수신 등을 석방해 다시 등용하는 정치력을 보여줬다.
이준경 묘는 부인과 한 봉분에 같이 묻힌 합장묘(合葬墓)다.
다시 가정천으로 나왔다. 부용 1교와 3교를 지나, 부용2교를 반대로 건너 길이 이어진다.
이 곳 부용리(芙蓉里)에는 기숙학원 ‘에듀셀파’가 있다. 학원 기숙사의 빨간 벽들이 인상적이다. 그 앞 나무 정자쉼터에는 사람 대신 무청 ‘시레기’들이 걸려있다.
정자 너머는 논두렁길이 이어진다. 그 길을 돌아가, 다시 하천을 건넌다. 이번에는 비닐하우스가 있는 밭길이다. 곧 ‘물소리길 화장실’과 인증대(引證臺)가 나타난다. 그 앞 조금 넓은 공간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어간다.
다시 출발하니, 경기도기념물 제 89호 한음 이덕형 선생 신도비(神道碑)가 반겨준다.
이덕형(李德馨)은 ‘조선 최고의 외교관’으로 손꼽힌다. 임진왜란 당시 조정을 대표해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 등과 담판을 벌이며, 전란의 책임을 공박했다 한다. 특히 청원사로 명나라에 파견돼 원군 파병을 성공시켰고, 명장 이여송(李如松)의 ‘접반관’으로 그를 응대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양호를 설득해 한양을 방어하고 명군과 울산까지 동행, 그들을 위무했다. 이어 명나라 제독 유정과 연합, 순천에서 통제사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고니시의 왜군을 대파했다.
전후에는 민심 수습과 군대 정비에 노력했고, 영의정에 올랐다.
광해군 때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과 폐모론이 제기되자 이를 반대하다가 ‘삭탈관직’된 후, 이 고장 용진(龍津)으로 은퇴해 나라를 걱정하다가 눈을 감았다.
이항복(李恒福)과는 어릴 적 친구로,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바로 ‘오성과 한음’ 이야기다.
신도비는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비다. 받침은 네모나고, 머릿돌에는 용을 새겨놓았다. 매우 섬세하고 생동감 있는 조각이다. 효종(孝宗) 4년 세웠는데, 조경이 비문을 짓고 오시복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이덕형 선생의 묘는 신도비에서 약 300m 떨어진 산에 있다.
이어지는 산길은 가정천변 가파른 산비탈이 이어진다. 자칫 방심하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특히 겨울과 봄철 해빙기에는 조심해야 할 듯하다.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덕형의 시비(詩碑)가 서있다.
“물은 흘러 온갖 근심 떠나보내고, 구름은 복록 따라 일어난다네.
운길산은 중은동에 이웃해 있고, 용진은 월계(月溪)와 접해있네.
골짜기에 만발한 복사꽃 덤불 나그네 삶이러니, 언제 또 볼까”
다시 가정천을 건넌다.
이 동네는 목왕리(木旺里)다. 산에 나무가 많아 이렇게 불렸다. ‘동막골’이라고도 한다. 왠지 산골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니나 다를까, 곧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꽤 급경사의 산길을 오른다. 높이 366m의 부용산(芙蓉山)을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정상은 ‘샘골고개’로, 옛 성황당(城隍堂)이었을 것 같은 돌무더기들이 여럿이다. 여기서 최종 목적지인 신원역은 1.9km 거리다.
하산길도 급경사인 데다 낙엽이 잔뜩 쌓여 있어, 조심조심 내려왔다.
철책(鐵柵) 문을 나오니, 물소리길 인증대가 보인다. 이 구간 두 번째 인증대다. 이제부턴 ‘샘골’ 마을이다. 길 가에서 콩을 터는 아낙네가 정겹고, 한 농가 헛간 벽에는 어릴 때 보던 지게, 나무 쟁기, 가래 등 옛 농기구(農器具)들이 세워져있다.
낯익은 전원풍경 아래, 남한강이 유유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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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양 여운형 선생 생가/사진=미디어펜 |
길 왼쪽에 기와 및 초가 건물들을 두른 한옥 담장이 보인다. 바로 몽양 여운형 선생 생가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여운형(呂運亨)은 바로 이 곳 양서면 신원리의 자연부락 ‘묘골’에서 태어났다. ‘신한청년당’을 만들고 일제에 맞섰던 ‘온건좌파’ 지도자로,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고 김규식(金奎植)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다가, 극우파에 암살당했다.
그는 시대를 풍미한 탁월한 웅변가였고, 건장한 체구의 ‘몸짱’인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했다. 생가 앞 몽양기념관(夢陽紀念館) 옆에 체육시설이 있는 이유다.
지난 2011년 11월 개관한 몽양기념관에는 서거 당시 입고 있던 피 묻은 옷(등록문화재 제 608호)과 장례식 만장(輓章) 등 유물이 전시 중이다. 그 앞에 몽양 선생의 동상이 우뚝하다.
여기는 몽양이 1907년 설립한 광동학교(光東學校) 터이기도 하다. 광동학교는 당시 한양이 아닌 곳에서, 근대적 신학문을 가르친 최초의 학교였다고 한다.
이어지는 ‘몽양어록길’에는 몽양 유객문(留客文)이 새겨져있다.
“내가 사람이냐 아니냐를 알고자 할진댄, 나를 사람이다 아니다 하는 사람이 사람이냐 아니냐를 알아보도록 하라”. 교훈이 될 만한 글귀다.
강변에서 왼쪽 길을 조금 걸으면, 경의중앙선 신원역이 나온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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