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으로 되살아난, 신선이 놀던 섬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선유도(仙遊島), 신선이 놀았다는 섬을 뜻한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서울 영등포구 양화동에 있는 선유도는 본래 섬이 아니라 선유봉(仙遊峰)이라는 작은 봉우리였는데, 조선시대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명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1925년 대홍수(大洪水) 이후 제방을 쌓고 길을 포장하기 위해 선유봉의 암석을 채취하면서, 깎여나가 섬이 됐다고 한다. 해방 후 1965년 섬을 관통하는 양화대교(楊花大橋)가 건설된 데 이어 1978선유정수장이 생기면서, 아름다운 경관이 훼손되고 말았다.

선유정수장은 2000년까지 영등포 등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다가, 다른 정수장(淨水場)과 통합돼 이전하고, 이곳은 200012월 폐쇄됐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새 서울, 우리 한강사업의 일환으로 공원화 계획을 수립, 164억 원을 들여 시민공원으로 꾸몄다.

바로 2002426일 개장한 서울 시립(市立) ‘선유도공원이다.

폐기된 시설을 재활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례로써, 정수장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걷어내고 환경생태공원(環境生態公園)으로 꾸몄다. 부지 면적은 총 11400이다. 조경가 정영선과 건축가 조성룡이 대표 설계자며,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現代建築) 중 하나다.

선유도 이야기관201310한강역사관을 재개관한 곳으로, 선유도가 간직한 옛 이야기를 중심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도심 속 문화전시공간(文化展示空間)으로 활용되고 있다.

옛 송수 펌프실 건물을 보수해 만든 전시관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규모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면적은 1151이다. 한강 유역의 지질, 수질·수종·어류·조류·포유류 등 생태계와 한강 지도, 시민들의 생업, 한강변 문화유적, 무속신앙(巫俗信仰) 등 생활상을 보여준다.

한강의 나루터 분포도와 교량·상하수도·댐과 한강 유역의 수해 등 한강 관리의 역사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황포돛배와 한강수계도를 그래픽과 사인으로 선보이는 곳과 멀티미디어 정보갤러리, 휴게실, ‘만남의 공간도 있다.

또 수생식물원(水生植物園)에는 물봉선과 쇠뜨기·수련·검정말 등, 각종 수생식물 1만여 본이 심어져 있다.

선유도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시간의 정원이다.

   
▲ 선유도공원 '시간의 정원'/사진=미디어펜

세로 41m, 깊이 5m 규모의 침전지(沈澱地) 2곳을 재활용한 것으로, 이곳이 한때 수원지였음을 보여준다. 물을 모조리 뺀 침전지 콘크리트 구조물들 사이로 각종 나무와 꽃들을 심고, 그 위로 통로가 종횡(縱橫)으로 이어지며, 군데군데 계단을 설치해 위에서 조망할 수도 있다.

특히 기둥의 칙칙한 색깔과 거친 표면, 불규칙한 선이 각종 식물들과 절묘하게 어울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다. 옛 시설을 그대로 유지했기에, 아무 장식 없이 노출된 구조물들과 식물들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200석 규모의 원형극장(圓形劇場)과 카페테리아 나루등 부대시설도 들어섰고, 자작나무 숲과 미루나무 길도 조성돼 있다.

2동으로 이루어진 유리온실(琉璃溫室)에는 선인장 등 다육식물과 연꽃 등의 수생식물들을 심어놨으며, 과거 정수장이 있었던 곳답게, 식물들의 수질 정화 작용을 볼 수 있다.

공원에는 양화대교 외에 한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한강시민공원(漢江市民公園) 양화지구와 선유도를 잇는 너비 314m, 길이 469m의 보행전용 교량인 선유교도 설치돼 있다. ‘무지개다리로도 일컬어지는, 아치형의 멋진 다리다.

오늘은 이 선유도를 거쳐, 한강변을 걸어보기로 했다.

지하철 2호선과 9호선이 교차되는 당산역(堂山驛)에서 내려 4번 출구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양화한강공원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전철 선로 위 횡단보도다. 과거엔 4번 출구 밖에 있는 굴다리를 통해, 선로 밑으로 통과해야 했다.

횡단보도(橫斷步道) 위에서 한강공원을 넓게 조망할 수 있어, 더욱 좋다.

계단을 빙 돌아 내려서면, 바로 한강공원이다. 강변에 수상택시 승강장도 보인다. 온통 누런색 초목들뿐인, 초겨울의 한강공원은 다소 을씨년스럽다. 왼쪽 자전거길 앞에 안내센터와 몽골텐트가 보인다.

그 오른쪽으로, 보행자용 수변생태순환(水邊生態循環) 길이 이어진다.

곧 양화대교 밑을 지난다. 다리 교각에는 대중음악 뮤지션들의 모습을 그려놓았다. 곧 오른쪽에 선유교가 나타난다.

적갈색 아치형 교량인 선유교(仙遊橋)는 지난 2000새 천년을 맞아, 서울시와 프랑스의 공동 기념사업으로 20029월 착공, 20024월 개통했다. 신소재인 초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 가볍고 날렵한 모습이다. 238m 중 무지개 모양의 아치교 구간은 120m.

바닥과 난간은 환경친화적인 목재(木材)로 만들어져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느낌이며, 밝은 색조의 다리 구조물과 대비를 이룬다. 교량 아래에서 빨강과 노랑·초록·파랑 등 4가지 빛을 비춰, 야간에 더 아름답다.

다리 위에서 보는 성산대교 너머 풍경이 아스라하다.

선유도공원과 만나는 부분의 넓은 전망대에선 한강과 월드컵경기장, 202m의 분수대 등 주변 경관은 물론, 북한산(北漢山)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3개의 원통형 구조물이다. ‘환경체험마당의 일부다. 환경체험마당은 원형 구조물과 철제 다리, 녹슨 송수관(送水管) , 옛 정수장의 흔적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놀이마당이다.

이어 원형극장과 어린이들이 그림과 공작 등으로 환경학습을 하는 환경교실(環境敎室)이 있다. 그 옆 화장실도 원형 구조물인 조정조를 재활용했다.

환경체험마당과 원형극장, 환경교실 및 화장실을 뭉뚱그려 네 개의 원형공간(圓形空間)’이라고 이름 지었다. 정수하고 남은 불순물을 물과 다시 분리, 처리하던 시설인 조정조와 농축조 2개씩을 재생시켰다.

다음은 시간의 정원과 수생식물원이다. 오른쪽 강변은 바람의 언덕으로 명명됐다.

공원은 녹색(綠色) 기둥의 정원과 선유도 이야기관, ‘환경물놀이터’, 수질정화원(水質淨化院)및 온실로 이어진다. 맨 끝은 선유수질측정소이고, 그 너머는 양화대교로 연결된다.

섬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강변에 바로 보이는 것이 선유정(仙遊亭)이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양 날개를 펼친 듯한 팔작지붕아래, 단아한 검은색 목조 사각정자다. 거기서 보는 한강은 그야말로 시원한 풍경이다. 과거 옛 사람들이 강을 바라보며,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 풍류(風流)를 즐기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카페테리아 나루 앞을 지나고 전망대를 거쳐, 다시 선유교를 건넌다.

한강공원으로 내려서는 곳에, 검은 돌로 만들어진 시비가 있다. 교과서에 실린, 우리나라 국문학사 최초의 시가인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새겨져 있다.

공무도하가는 고조선(古朝鮮) 시대의 나루터일꾼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지었다는데, 미친 듯 보이는 흰 머리 노인이 물에 빠져죽는 것을 본 아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를 본 여옥이 공후(箜篌)라는 옛 현악기를 타면서 불렀다고 해서, ‘공후인이라고도 한다.

1899년 박준우 선생이 쓴 양천읍지기록에 따르면, 이 공무도하가의 무대가 당시 양천현의 양화도(楊花渡)라고 하며, 양화도는 현 양화대교 부근이란다.

강변 우측,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 한강을 가로지르는 성산대교/사진=미디어펜

원래 양화진은 강 건너에 있었지만, 지금 양화나루는 이쪽에 있다. 곧 성산대교(城山大橋) 남단이다. 마포구 망원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성산대교는 붉은 색 아치모양 상판과 난간을 지닌, 멋진 다리다.

다리 밑을 통과하니, 앞쪽에 월드컵대교가 보인다.

강 건너는 상암동(上岩洞)이다. 그 쪽에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의 함성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가을 도심 산책의 명소인 하늘공원노을공원도 손에 잡힐 듯하다. 과거 도시에서 버려진 쓰레기의 산들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으니, 선유도보다 더 놀라운 곳들이다.

여기도 재활용의 모범 케이스다.

월드컵대교를 지나 좀 더 가면, 안양천(安養川)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합류지점이다. 안양천 건너편은 더 이상 영등포구가 아니라, 강서구 염창동이다.

이 동네는 조선시대 소금보관창고(鹽倉)가 있었기에, 이런 이름이 유래됐다. 서해안에서 채취한 소금을 한강의 마포나루까지 운반하던 도중, 이곳에 염창을 지어 보관했다. 옛날에 소금은 매우 귀한 필수 전략물자로, 국가 전매품(專賣品)이었다.

암거래와 투기, 운반 도중 물에 녹는 등, 염전에서 출발한 소금의 양이 이곳 염창에 도착하면 급감, 염창 소속 관원은 물론 양천현(陽川縣) 관리들까지도 곤욕을 치루기 일쑤였다고 한다.

한강의 경치는 좋지만, 문제는 강바람이다. 겨울바람이 옷깃 속을 파고든다.

원래 좀 더 걸어 증미산(拯米山. 염창산이라고도 함)을 지나 가양역까지 가려고 했지만, 일행들이 추워해서 중탈하기로 했다. 다행이 안양천변 옆 강변도로를 건너는 횡단보도가 보인다.

길을 건너 안양천을 따라 조금 거슬러 올라가다가 염창무학아파트옆 골목길에서 우회전, 조금 가면 오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10시 방향 골목길을 직진하다가, 대로를 만나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지하철 9호선 염창역(鹽倉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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