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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문화평론가 |
며칠 새 사람들은 리콴유를 싱가포르 국부(國父)이자 현대아시아의 거인이라고 칭송했다. 그게 합당한 자리매김이겠지만, 나는 서운했다. 서운하다 못해 억울했다. 남의 나라 지도자를 그렇게 떠받들며 이 나라 건국 대통령과 부국의 지도자를 독재자로 매도하는 못된 풍토가 기막혔다.
한국사회 특유의 고약한 이중성 혹은 허위의식이 하늘을 찌르는 판인데, 물어보자. 리콴유는 몇 년을 집권했지? 무려 31년이다. 초대총리 취임 이후 재임기간만 그러했는데, 선임장관 등으로 막후 영향력을 행세한 걸 포함하면 그는 반세기의 무한 권력을 누렸다.
한국의 풍토라면, 이걸 용납이나 했을까? 더구나 그의 아들(리센룽)이 현 총리로 군림 중인데, "부자지간에 다 해 먹는다"고 난리였을 것이고, 야당과 국민은 그를 내쫓을 궁리에 여념 없었으리라. 그리곤 그 잘난 풍토를 민주주의 승리로 포장했을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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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리콴유는 일제 점령기 때 일본군 정보부에서 일했고 일제가 물러간 뒤 등장한 새 식민제국 영국에 유학을 갔다. 리콴유가 만약 한국인이었다면 친일파에 친영파로 매도당했을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
리콴유가 한국인이라면, 친일파에 친영파로 매도당했을 것
아니다. 이 나라 분위기라면 리콴유는 정계 입문조차 못했다. 친일파 딱지부터 걸림돌이 됐을텐데, 젊은 시절 리콴유는 일제 점령기 때 일본군 정보부에서 일하지 않았던가?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명제 앞에 어쩔 수 없었던 당시 젊은이의 선택을 싱가포르 사람들은 무던히도 참아냈고, 그래서 걸출한 지도자를 만들어냈다.
반면 한국 사람이라면 친일파 손가락질에 부관참시도 서슴없었을텐데, 리관유는 약점이 또 있다. 그는 동시에 친영파 인사다. 일제가 물러간 뒤 등장한 새 식민제국 영국에 유학을 갔다는 것 자체가 속 좁은 한국 민족주의의 논리 속에서는 영락없는 제국주의 주구(走狗)로 낙인 찍힌다.
더구나 귀국 후 리관유는 정치 입문을 하면서 영어를 제1공용어로 밀어붙였다. 당시 싱가포르와, 오랜 역사의 한국 사이의 문화 자체가 달랐다는 차이가 있겠지만, 리콴유 따위는 한국 땅에서는 매판 지식인으로 찍혀 사회활동조차 불가능했을 게 불 보듯 뻔하다.
또 있다. 그는 "언론자유보다 우선하는 게 국가의 단합"이라는 소신을 가졌던 정치인이다. 동시에 이승만-박정희 못지 않는 강경 반공주의자로도 유명했는데, 잘난 한국의 민주주의 풍토와 좌파 득세의 분위기에서라면 시대착오적인 독재자 소리에, 수구꼴통이란 지적을 면치 못했을 게 명백하다.
어떠신지? 이런 단순비교에 동의 못하겠다고 펄펄 뛸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나라에선 이승만을 말하고 박정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로 통하지 않던가? 장관 청문회 때면 "5,16이 쿠데타냐 혁명이냐?"를 물으며 굴복을 요구하는 국회가 존재하지 않던가? 하지만 아닌 건 아니다.
그 이전, 초중고 교과서는 물론 대학 커리큘럼 자체가 온통 오염돼 있으니 더욱 큰일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각급학교는 건국의 가치를 부정하고, 한강의 기적을 폄하한다. 경제학이 그러하고 정치학 사회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회과학이 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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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파에 매국노라는 좌파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왼쪽)과 박정희 대통령. 리관유 서거를 계기로 두 대통령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
오늘은 이승만 탄생일, 2년 뒤는 박정희 탄생 100주년
그래서 얼치기 먹물들은 이승만과 박정희 해독 못한다. 사회과학은 물론 인문학까지 '아카데믹한 거짓말’,‘학문이라는 이름의 사기(詐欺)’의 대열에 합류해 반 이승만과 반 박정희를 외친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이들이 삼류 아카데미즘의 주술(呪術)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동인형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악을 쓰며 기승을 부린다. 모두가 과거사를 들먹이며 자해(自害)에 열중하고,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 난리다. 이런 이 나라의 풍토가 쉬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리관유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나는 더욱 비감(悲感)해지고 우울하기 짝이 없다. 몇 해 전 한 유명한 언론인으로 청와대 수석까지 지냈던 인사가 이런 제목의 단행본을 펴냈다.
<우리도 좋은 대통령을 가지고 싶다>. 유치한, 너무도 유치한 이 책의 수준이 딱 한국이다.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건국 대통령을 가졌고, 가난에 찌든 이 나라를 신데렐라 국가로 벌떡 일으켜 세운 부국 대통령을 배출한 이 나라에서 이 무슨 헛소리인가? 이러고도 지식인이라고?
리더십만큼 중요한 게 팔로우십(Followship) 아니던가? 지도자의 비전만큼 훌륭한 리더십을 따르는 조직원들의 역량이 중요한데, 엉터리 학문체계에 삼류 선동언론이 난리인 이 나라에선 팔로우십이란 미덕이 통하지 않는다.
한국은 일탈과 방종을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고 착각하는 타락한 민주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다. 혁명적 저항권을 들먹이던 구 통진당 류의 좌파도 여전하다. 집단지성 어쩌구를 내세우는 바보들도 부지기수다. 그리고 지금 국회는 대통령 권력을 찬탈하려는 개헌 음모에 코 박고 있는 게 엄연한 우리 현실이다.
올해는 이승만 서거 50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오늘 26일은 그의 탄생 140년 생일이다. 이승만을 역사 속에 매장해 대한민국 건국의 뜻을 흠집내려는 좌파의 공세도 걱정스럽지만, 그걸 막지 못한 채 주눅 든 이 나라 정부도 문제는 문제다.
더욱이 2년 뒤면 박정희 탄생 100년인데, 이 위대한 지도자를 제대로 평가하는 이가 드물거나 없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좋아질 가능성이 없다. 정말 기이한 풍토에서 '박정희 반대로!'를 개혁이자, 사회적 정의라고 우기는 이들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우남과 박정희, 그 둘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이 있는 거 아닙니까? 하늘이 내려준 두 지도자를 한꺼번에 매장하면, 대한민국 사람들 정말 천벌을 면치 못할 겁니다. 이러면 안 돼요."
1년 전 내게 이렇게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뉴데일리 인보길 회장이 그 분인데, 100 퍼센트 찬동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리관유 서거를 계기로 대한민국 국민들 정말 철이 좀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철이 들려면 좀 제대로 들길 나는 원한다.
그래서 광화문광장에 건국과 부국의 두 지도자 동상부터 세우자는 운동부터 벌이는 걸 보고 싶다. 물론 나도 기꺼이 참여하겠다. 고액권 지폐에 두 분의 얼굴사진이 나란히 들어가는 것도 기본이다. 그리고 국가의 생일이 없는 이 희한한 나라에 당장 건국절(建國節)부터 제정되길 나는 원한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