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경기도 오산(烏山)에 있는 독산성은 사적으로 지정돼 있고, 본성의 총 연장은 1100m이며, 내성은 350m의 산성이다.
산 정상을 빙 둘러 축조한 ‘테뫼식’ 석성이다.
‘독성산성’이라고도 하는 독산성(禿山城)은 위치적 특성 상, 조선시대 때 용인 ‘석성산성’ 및 남한산성(南漢山城)과 삼각체제를 이뤄, 도성 남쪽의 방어를 굳게 했다는 점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백제(百濟)가 처음 목책으로 쌓았고, 곧 판축(版築) 토성이 됐으며, 통일신라나 고려시대 때도 군사상 요지였다.
독산은 본래 석대산, 향로봉이라고 불려왔고 조선시대에 독산성이라 했다.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 장군이 폈던 병법 전략에 따라, ‘세마산’ 또는 ‘세마대’라고도 부른다.
독산성은 주변에 높은 산이 없고 벌판에 우뚝 솟아있어, 사방이 잘 내려다 보인다. 군사기지로서 중요지만, 샘물의 부족이 흠이었다.
1593년(선조26) 명나라 원군이 평양을 수복하고 남하하자, 전라도 순변사(巡邊使)이던 권율 장군이 명군과 호응하여 서울을 수복하기 위해 근왕병(勤王兵)을 이끌고 북상, 이곳에서 수만의 적 대군과 대치했다.
그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이 벌거숭이산(독산)에 물이 없을 것으로 보고, 탐정군사에게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 보내 아군을 조롱했다.
그러자 권 장군은 백마(白馬)를 산 위에 끌어올려 흰 쌀을 말 등에 끼얹어, 말을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게 하였다. 이것을 본 가토는 성 내에 물이 많은 것으로 오판, 퇴각했다고 한다.
권 장군은 변이중으로 하여금 화차(火車)를 발명, 제작하게 하고 이를 이용,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적을 대파하고 도성을 수복, 큰 전공을 올렸다.
전쟁이 끝난 후 조정에서 독산성에 세마대(洗馬臺)를 세우고, 병기창을 두어 무예연습을 하게 했으며, 정조16년(1792년)에 독산성과 세마대를 중수했다. 지금의 성벽은 정조 때의 것이다.
정상에는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 친필의 ‘세마대’ 현판이 붙은 누각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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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산성과 보적사/사진=미디어펜 |
독산성 가는 길은 오산이 아닌, 화성(華城) ‘병점역’에서 시작된다.
병점역 2번 출구로 나와, 왼쪽 도로를 따라간다. ‘유엔아이센터’ 앞을 지난다. ‘벌말마을’ 표지판이 있는 생활체육공원(生活體育公園)을 지나, 굴다리를 통해 1호선 전철과 경부선 철도를 밑으로 통과한다.
이제 오산시다. ‘오산 세마 e편한 세상’ 아파트 앞을 지나, 삼거리에서 길을 건넜다. ‘영광감리교회’ 앞에서 왼쪽 길을 따라간다. 잠시 후 계단을 오르면, 산길이 시작된다.
오른쪽에 ‘늘 푸른 오스카빌’ 아파트를 끼고, ‘독산성 등산로(登山路)’를 따라간다.
고즈넉한 산길 안내판 옆에 서 있는 나무 장승이 해학적이다. 심심치 않게 사람들과 마주친다. 지역 주민들이 사랑하는 길 같다.
쉼터 비슷한 곳에 나무 2그루가 붙어있고, ‘연리지(連理枝)의 사랑’ 안내판이 보인다. 사실은 가지가 붙은 연리지가 아니라, 본 그루가 붙은 연리주(連理株)다.
한신대학교(韓信大學校) 가는 삼거리를 지났다. 양지바른 무덤 밑을 지나니, 오른쪽에 ‘양산봉’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179.3m의 양산봉 올라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지만, 그리 높지 않아 곧 정상이다. 정상에는 팔각 나무 정자(亭子)가 있다. 정자 위에 오르니, 경관이 트여 주변 일대가 굽어 보인다.
양산봉을 내려와, 계속 길을 따라간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長生, 長栍)들이 양쪽에서 독산성 입구를 지키고 있다. 그 앞을 지나, 삼림욕장(山林浴場) 표지판 앞에서 오른쪽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독산성 성곽이 나타난다.
성벽을 통과하는 문 안에, 보적사(寶積寺)가 있다.
이 절은 백제가 처음 독산성을 쌓은 후, 성내에 승전을 기원하며 창건했다고 한다. 보물을 쌓는다‘는 절 이름으로 보아,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기복사찰(祈福寺刹)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내에는 정조가 화성 용주사를 건립할 당시 중건했다는 주 법당인 약사전(藥師殿)과 요사채, 3층 석탑 등이 있다.
사찰을 지나, 본격적인 성곽 길에 들어섰다.
독산성은 성벽은 잘 보존돼 있지만, 성문과 여장(女墻)은 모두 없어졌다. 눈 쌓인 성곽 길은 더욱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성곽 길을 따라 걸으면, 주변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화성, 오산, ‘동탄 신도시’, 수원시내까지 잘 조망되고, 광교산(光敎山)도 가까워 보인다. 발 아래로 ‘황구지천’이 흘러간다.
서문 터 밖으로, ‘삼남길’이 이어진다.
세마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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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마대/사진=미디어펜 |
제법 화려한 누대(樓臺)다. 정말 왜군이 말 등에 쌀을 붓는 것을 보고 속아서, 포위를 풀고 물러갔을까? 그냥 전설일 뿐이고, 아마 아닐 것이다. 이 곳 문화해설사도 그렇게 추정한다.
다시 보적사를 거쳐, 산성을 빠져나왔다.
삼림욕장 표지판이 있는 곳 왼쪽 길은 삼남길이다. 삼남길 제7구간 ‘독산성길(7.2km)’ 구간은 세마교(洗馬橋)에서 시작, 독산성을 통과해 ‘세교지구’에서 8구간 ‘오나리길’로 이어진다.
우리는 반대쪽 길로, 독산성 등산로를 따라간다.
‘독산성 음식문화(飮食文化)의 거리’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세마역’을 향해 걷는다. 이 길도 ‘독산성로’로 명명됐다.
세마교차로를 지난다. 이제까지는 오산시 지곶동(紙串洞)이고, 앞으로는 ‘세마동’이다.
길 왼쪽에 실개천이 흐르는데, 하천 이름은 알 수 없고 ‘은빛개울공원’으로 기록돼 있다. 오산천(烏山川)의 한 지류로 생각된다.
‘세마동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 다음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전철 1호선 세마역(洗馬驛)을 만날 수 있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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