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관심을 표하면서 이와 관련된 정부의 계획이 쏟아지고 있다. 다만 반도체 산업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의 지나친 간섭은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에 맡기는 게 진정한 민간 주도 성장이라는 목소리다. 더욱이 1980년대 반도체 산업 전성기를 보냈던 일본이 정부의 개입으로 쇠락의 걸었던 전례가 있는 만큼, 이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인재 양성을 위해 우리가 풀어야 할 규제가 있다면 과감하게 풀고, 정부가 재정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며 국내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2만 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동안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는 학계의 오래된 난제였지만 윤 대통령의 과감한 규제 완화로 ‘반도체 인력난’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발언 후 당정이 발 빠르게 반도체 산업 육성에 관심을 표하며,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우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반도체 발언 이틀 후인 9일 국민의힘은 ‘반도체산업지원특별위원회’ 설치를 발표하고, 오는 14일 열릴 의원총회에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초빙해 반도체 특강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9일 교육부를 방문해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면 과거처럼 돈을 퍼붓는 것이 아니고 인재를 양성하는 전략이 가장 핵심”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한 마디에 당정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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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
당정의 이 같은 움직임에 일각에서는 “차라리 번쩍 보이는 관심으로 끝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의 지나친 관심과 개입이 반도체 산업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1980년대 디램(DRAM)업계에서 세계 정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일본이 1990년대 말 디램 사업을 철수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정부의 개입’으로 꼽힌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일본 반도체산업의 위기와 시사점’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일본 반도체산업은 1970년대 통산성(MITI 전신)이 주도한 ‘초LSI기술연구조합’을 기반으로 황금기에 진입했다. 그러나 반도체산업이 몰락하는 계기를 만든 것도 국가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와 기업이 추진한 국가 프로젝트가 난립하고, 그 과정에서 반도체 기업들 간의 협조가 원활하지 못함과 동시에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결국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에 밀렸다는 진단이다.
해당 보고서는 “정부의 개입범위가 적정범위를 벗어날 경우 실패할 확률이 크다는 점에서 시장과 기업에 맡기되 정부는 꼭 필요한 부분에 한하여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윤 정부의 지나친 간섭 역시 한국 반도체 산업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 정부의 개입이 아직 일본 정부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반도체 산업이 기업의 노고로 성장한 만큼, 기업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조언이다.
권혁철 자유와시장연구소 소장은 “반도체를 비롯한 모든 산업은 정부, 정치권 권력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나고 자라 성장한다”며 “일본이 반도체 주도권을 우리에게 빼앗긴 계기가 일본의 MITI가 반도체 산업에 적극 개입한 것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전자 등 기업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발목만 잡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정부, 정치권 권력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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