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일본에서 10일 치러진 참의원선거에서 집권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이 압승을 거뒀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집권 이후 지난해 10월 중의원선거에 이어 연거푸 승리를 거둔 것으로 집권 10개월을 맞은 기시다 총리가 ‘정치적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에서 당분간 대형 선거가 없는 소위 ‘황금의 3년’을 맞아 2024년 차기 자민당 총재선거까지 기시다 총리가 자신의 색깔을 내며 장기집권을 다질 기회를 맞았다는 것이다. 특히 당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고치카이’를 이끄는 기시다 총리가 외교에서도 유연성을 발휘해 한일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시다 총리가 올 1월 우리나라의 반발 등을 고려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동이 이뤄진 니가타현 소재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당내 보수 강경파들의 거듭된 요구에 결국 등재 신청으로 방향을 돌린 것 등이 이런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하지만 일본의 ‘최장수 총리’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선거유세 도중 급작스럽게 총격을 받아 사망한 일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만큼 세계 각국에서 조문이 쇄도하고 있고, 관례에 따라 정부·자민당이 주관하는 합동 추도식도 도쿄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등 아베 전 총리 사망과 관련해 장기간 ‘조문 정국’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도 선거 직후인 11일 아베 전 총리가 힘을 쏟아온 헌법 개정을 가속화하고, 방위력을 5년 이내에 근본적으로 강화하고,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것을 볼 때 ‘아베의 부재’가 오히려 기시다 총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마이니치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이번 선거 승리로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했으나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당내 정세가 급변하면서 앞날이 더 불투명해졌다”면서 “무리하게 ‘기시다 색깔’을 내세우면 맹렬한 당내 반발을 초래하고 당내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
|
|
▲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 마련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분향소를 찾아 작성한 조문록. 2022.7.12./사진=대통령실
|
더구나 자민당 최대 파벌이자 강경 보수 성향인 ‘세이와카이’(아베파)에 아베 전 총리의 뒤를 이을 후계자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어서 기시다 총리로선 자신의 ‘색깔 내기’보다 권력기반을 강화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선거 당시 아베파의 지원을 받아 승리했다. 그는 또 그동안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아베 전 총리와 상담해왔으며, 때로는 아베 전 총리의 주장에 따라 자신의 정책 방향을 수정하기도 했다. 12일 도쿄의 한 사찰에서 가족 및 친지, 지인들이 모여 치른 아베 전 총리의 ‘가족장’에도 기시다 총리가 참석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은 “고치카이 출신 4번째 총리인 미야자와 재임 기간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고노 담화’가 발표된 것처럼 기시다 총리가 온건파 출신인 것은 맞지만 그의 색깔을 정책에 반영하기에 한국 일본의 상황이 모두 녹록치 않다”고 진단했다.
조 센터장은 “한국에선 대법원 판결에 따른 전범 일본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문제가 임박한 상황이고, 일본에선 2년여 뒤로 다가온 차기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있어 재선을 노리는 기시다 총리가 유연성을 발휘할 환경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에 조 센터장은 “우리정부가 마땅한 방안도 없이 한일 간 현안을 해결하려고 나서기보다 기시다 총리가 최근 공개적으로 밝힌 방위력 강화 공약에 신경 써야 한다”면서 “기시다 총리가 주변국가에 투명하게 설명하겠다고 했으니 어떤 내용으로 군사대국으로 가려고 하는지 투명하게 밝히도록 소통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이르면 다음달 하순 개각 및 자민당 간부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 등이 12일 보도했다. 따라서 이번 개각에서 아베파 소속 인사들이 대거 교체되는 대폭 인사를 단행해 2~3위 파벌과 결속을 강화할지 또는 기존 등용된 아베파를 잔류시키는 소폭 개각으로 아베파 힘을 유지할지에 따라서 기시다 총리의 향후 정책 방향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