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박진 외교부 장관이 취임 후 처음 중국을 방문해 산둥성 칭다오에서 왕이 부장과 세 번째 대면 회담을 가졌다.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왕이 외교부장이 5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등 기존 중국의 입장을 강조했다. ‘사드 3불’처럼 한국에 5가지 원칙을 제시한 것인데, 박진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국익과 원칙, 또 ‘화이부동’(다른 것을 인정하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의 정신을 내세웠다.
왕이 부장이 제시한 ‘5가지 요구’는 독립 자주, 선린우호, 윈윈, 평등 존중, 다자주의이다. 이는 국 미국의 간섭을 받지 말고,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기존 공급망과 산업망을 수호하며, ‘사드 3불’을 지키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중국측은 미국이 주도해 한국, 일본, 대만이 참여하는 공급망 협의체인 ‘칩4’(Chip4 또는 Fab4)에 대해 한국 가입을 적극 만류하던 입장을 바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관영매체는 이날 “한국이 부득이하게 합류해야 한다면 균형을 잡고 시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도해 다른 한편으로 압박했다.
정부는 지난 5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면서도 “초기 단계부터 룰 메이커(Rule Maker)로 참여해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므로 이번 칩4 참여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기조로 중국을 설득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이번에 칩4 예비회담 참여를 통보했고, 이에 대해 왕이 부장은 “적절하게 판단해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이 부장이 언급한 ‘적절한 판단’에 대해서는 해석하기 힘들지만 우려가 섞인 ‘입장보류’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우리정부가 칩4에서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받을 것이므로 자칫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칩4가 운영될 경우 언제라도 한중 갈등이 격화될 수 있는 ‘뇌관’은 남은 셈이다.
이와 함께 또 하나의 뇌관인 중국의 ‘사드 3불’ 원칙에 박 장관은 합의나 약속이 아니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해 평행선을 달렸다. 문재인정부에서 나온 ‘사드 3불’은 중국이 사드 추가 배치 반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를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사드 문제가 한중관계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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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일 중국 산동성 칭다오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갖기 위해 만나 인사하고 있다. 2022.8.9./사진=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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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장관과 왕이 부장은 가수 보아와 중국 가수 류위신이 함께 나오는 뮤직비디오를 확대회담 도중 함께 본 사실도 전해졌다. 박 장관은 특히 양국 국민간 교류, 특히 젊은세대의 마음의 거리를 좁힐 필요성을 강조했고, 사드 3불은 양국 관계에 걸림돌이 될 뿐이며, ‘한한령’(한류 제한령)을 풀어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이번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는 최대 민감 이슈인 칩4와 사드에서 서로의 입장차를 재확인하면서 북핵 문제와 한중정상회담을 여전히 숙제로 남긴 셈이다.
박 장관은 공개 모두발언에서 화이부동의 정신으로 한중 협력을 언급한 뒤 북한이 도발 대신 대화를 선택하도록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했다. 이어 한중FTA 서비스·투자협상 타결,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와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촉구했다.
외교부는 관련 보도자료에서 “박 장관은 북한이 끝내 도발을 감행할 경우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단합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가 10일 공개한 발표문에는 이 같은 내용이 없다. 중국 발표문에는 북핵 문제 언급대신 ‘사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양국 관계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된다고 인식했다’고 담았다. 또 ‘공급망 수호에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중국 외교부는 브리핑에서 사드의 추가 배치를 제한하는 1한(限) 원칙을 더해 '사드 3불 1한'을 공식화했다.
결국 칩4 문제에서 일단 입장보류를 선택한 중국이 ‘사드 3불’ 원칙을 고수했으나 한국의 화답을 듣지 못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협력 요청을 외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4년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년째 방한하지 않은 배경에 한반도 사드 배치와 이에 따른 한한령 조치가 있다. 박 장관이 올해 의장국으로서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거듭 촉구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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