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기록적인 집중 호우로 피해가 집중된 지하·반지하, 판자촌·쪽방촌 등 열악한 주거지에 대한 전면적인 대책 마련 요구가 거세지면서, 서울시가 향후 반지하 주택을 전면 금지하고 기존 주택도 일몰제로 없애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지하·반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비용 부담 가능한 수준의 대체 주택 공급, 지하·반지하 주택에서 지상의 민간 주택으로 이주하는 것이 과도하게 부담이 되는 가구에 대한 주거비 보조 등이 전제가 되지 않는다면, 서울시의 대책은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많은 선진국들은 지하 주택 건축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최저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임대를 놓는 것도 법으로 금지한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지하 주택 신축이 금지돼 있지 않고, 수 십만 가구가 지하·반지하 주택, 또 다른 수십 만 가구가 주택이 아닌 고시원 등에서 거주하지만, 지하 주택을 최저 주거 기준 미달이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 2010년에도 태풍 피해 대책으로 저지대 주거용 반지하 신축을 금지했고, 2012년 건축법 개정으로 상습 침수 구역 내 지하층은 심의를 거쳐 건축을 불허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반지하 주택은 계속 지어졌고, 반지하에 사는 가구 수는 지난 2020년 기준 전국적으로 32만 7320가구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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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서울시장/사진=미디어펜 윤광원 기자 |
이번 사고 발생 후 서울시는 다시 상습 침수 구역, 침수 우려 구역 아닌 곳에서도 (반)지하 주택을 짓지 못하도록 건축법을 개정하는 건의를 하고,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추진해 순차적으로 주거용 지하 반지하 건축물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기존 주거용 (반)지하에 대해 건축주 인센티브로 유도하는 방안으로는 실효성이 부족하고, (반)지하의 단계적 일몰을 강제하는 강행 규정과 주거 이전 대안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기존 세입자들에게 공동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주거 상향 사업'을 시행 중이라면서, '모아주택' 등 정비사업과 함께 공공 임대주택, 주거 바우처를 대안으로 언급했다.
반면 취약 계층용 공공 임대주택 공급 확대 계획 없이, 정비사업을 통해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대책은 '세입자 내몰림'만 초래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저소득 주거 취약 가구의 경우, 장소 기반 복지나 일자리, 관계망 형성 등의 이유로 해당 지역에서 장기간 거주한 경우가 많아, 그만큼 기존 지역 생활권 내에서의 매입 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시급하다.
그럼에도 SH공사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내년부터 매입 임대주택 예산 축소를 계획하고 있다.
또 서울시는 주택 바우처로 주거 상향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서울시 주택바우처의 지급 대상은 중위 소득 60% 이하인 가구(주거 급여 수급 가구는 제외)로 1인 가구 월 8만원, 2인 가구 8만 5000원, 3인 가구 9만원 4인 가구 9만 5000, 5인 가구는 10만원을 각각 지원하고 있다.
이 정도 금액으로, 지하 방에서 지상의 양호한 주택으로 이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1~2인 가구 기준 월 12만원의 추가 금액을 지원하는 특정 바우처 대상에서, (반)지하 주택 가구가 제외되는 문제도 있다.
아울러 서울시는 이번 대책에서 주거 복지 예산 확대와 공공주택 공급 확대 계획을 말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약 20년에 걸쳐 추진되어야 할 약 20만 호의 가구에 대한 주거 이주와 관련, 아직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쪽방 등 주거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공공 임대주택을 제공하면서 부족한 보증금을 지원하고 주거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는 주거 취약 계층 주거 지원 사업은, 고질적으로 공급 물량 부족에 시달리고, 늘 예산이 부족했다.
현재 수도권 기준 최대 1억 2000만원의 전세 임대 지원금으로는 반지하 이상의 전셋집을 구하기도 어렵고, 전국적으로 주거 취약 계층 주거 지원 사업 연간 지원 가구 수도 수천 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향후 지하 거주 가구까지 정책 대상에 포함하려면, 훨씬 더 많은 매입·건설형 공공 임대주택 공급이 필요하다.
(반)지하 주거가 유지되는 이유는 도심 내 저렴한 주택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기존 반지하 세입자가 나간 뒤 비주거용 용도로 전환하는 것을 유도할 방침이나, 정비 사업을 통한 주거 환경 개선은 지하 주택의 수를 줄일 수는 있어도, 도심에 저렴한 주택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더 열악한 주거로 내몰리게 마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앞으로 (반)지하 주택을 못 지으면 도시형 생활 주택, 옥탑방 값이 오를 것이고, 이런 주택에서 밀린 이들은 다시 고시원에서 북적거리게 될 것이고, 고시원을 찾기 어렵게 된 이들은 쪽방, 여인숙, 비닐하우스, 만화방, 피시방, 심지어 컨테이너나 움막 등의 거처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
더욱이 윤석열 정부는 공공 임대주택 공급 자체에 관심이 많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보다 연간 3만호가 줄어든 연 10만호 수준으로 대폭 감소(이중 건설임대 연간 5만호→ 3만호 축소)된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당장 공공 임대주택을 확대하고, 취약 계층 주거 상향과 저소득층 주거비 보조를 위한 주거 복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공공 택지에 공공 임대주택 공급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김선수 서울시 주택정책과장은 "서울시는 반지하 거주 가구를 포함, 주거 상향 지원 사업으로 2020년부터 현재까지 공공 임대주택 2610호를 공급했으며, 향후 '장기 안심 주택', 매입 전세주택, 공공 전세주택 등을 활용해 연차·지역별 주거 이전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지하 거주 가구의 지상층 주거 이전에 따른 임대료 상승을 지원하기 위해 특정 바우처 신설을 검토하고, 임대주택 물량 부족에 대한 보완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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