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외교부는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우리업체 차종이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과 관련해 “한미 FTA와 WTO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으며, 법집행에 있어서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25일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제통상법 위반 요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분간 법개정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사안과 관련해선 앞서 지난 19일 박진 외교부 장관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IRA 문제를 제기했고, 비슷한 시기에 조태용 주미대사가 사라 비앙키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와도 면담한 바 있다.
외교부 본부 차원에서도 이미연 양자경제외교국장이 주한 미국대사관 경제공사와 지난 24일 면담해 항의하는 등 미국측에 다각적인 외교채널로 이번 조치의 부당함에 대해 정부의 입장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IRA를 매우 이례적으로 초고속으로 통과시켰다고 설명했다. IRA는 이달 8일 문안이 공개됐고, 11일 통과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사인하면서 곧바로 발효가 돼서 16일 공식 발표됐다.
우리입장에서는 IRA 발효 전 물리적으로 대응할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미국 입장에서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시급하게 처리할 사안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IRA 서명 후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는 등 민주당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어 선거 이전 법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당국자는 “민주당 내에서 IRA 관련 문안 협상이 있었을 때에도 비공개였으므로 우리가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면서 “열흘도 안 되는 상황에 입법이 돼버렸다. 통상 상·하원에서 각각 처리하고 조정위 절차를 거치던 과정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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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부 청사(왼쪽)와 정부서울청사./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이 당국자는 “가장 중요한 조립 요건은 입법을 통해서만 수정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 되게끔 노력을 차곡차곡 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엄청난 금액을 투자하는 상황에서 (이번 IRA 규정이) 양국간 높아진 우호관계와는 너무 다르다는 점을 계속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즉 IRA에 명시된 ‘북미 지역에서 완전히 조립된 전기차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요건이 명확해서 법개정 전까지는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 당국자는 “배터리 부품, 핵심광물 사용 요건은 아직 정해지기 전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우리측에 유리한 내용을 촉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미 지역에서 조립된 전기차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 IRA가 시행되면서 우리업체인 현대차와 기아차를 비롯한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전기차는 7500만 달러의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한국산 전기차 모델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다만 IRA에 리튬, 흑연 등 배터리 핵심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미국 또는 미국과 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수출·가공했거나, 북미지역에서 재활용했을 경우 375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게 하는 요건이 내년부터 추가된다. 이와 함께 배터리 부품에 북미산이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면 역시 3750달러의 세액공제를 내년부터 적용받을 수 있게 했다.
이들 2가지 요건에 대해선 미 재무장관이 올해 말까지 세부지침을 발표하게 돼 있는데 우리정부는 그 기간 동안 설득 작업에 매진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조태용 주미대사는 미 상·하원 친한파 의원, 자동차공장이 있는 주 출신 의원을 대상으로 우리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아울러 외교부에서 경제외교를 총괄하는 이도훈 2차관이 카운터파트인 호세 페르난데스 미 국무부 경제차관에게 서한을 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한미 FTA 분쟁절차’나 ‘WTO 제소’ 카드를 꺼내들지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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