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남한 공격을 목표로 삼은 전술핵무기 운용 군사훈련을 최근 보름간 단행한 이후 남한에서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여당 정치인들이 잇따라 전술핵 재배치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데다 윤석열 대통령도 11일 관련 질문에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전술핵 재배치 논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12일 대통령실 안팎에선 엄중한 상황이 또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국의 확장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전언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날 “언제든 우리 머리 위로 핵폭탄이 떨어질지 모른다. 우리만 30여 년 전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에 손발을 묶어놓고 있다. 이제 결단의 순간이 왔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정 위원장은 다만 이날 오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 파기가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는 “바로 그것과 연결 짓는 것은 좀 무리”라며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우리가 쉽게 여겨 넘길 수는 없는 것”이라며 다소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10일 노동신문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7차례에 걸쳐 전술핵 운용부대 발사훈련을 직접 지휘했다면서 28일 남한 비행장 타격훈련, 10월 1일 표적의 상공폭발 훈련과 정밀 및 산포탄 타격 배합훈련, 9일 적의 주요 항구 타격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
|
|
▲ 북한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지도 하에 전술핵 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저수지에서 솟구치는 북한 탄도미사일. 2022.10.10./사진=뉴스1
|
같은 시기 한미도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을 동원한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했고, 1일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선 첨단 무기체계를 설명하는 영상을 공개, ‘3축 체계’의 하나이자 9톤 탄두를 탑재해 마하10의 속도로 800㎞까지 날아가 지하 100m를 관통해 ‘괴물 미사일’로 불리는 ‘한국형 대량응징보복’(KMPR)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이 공공연하게 핵공격을 언급하는 상황에서 남북 간 전력 비대칭이 크기 때문에 일단 남한에도 전술핵을 재배치해서 대칭을 맞춘 다음 전술핵 철수를 카드로 삼아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조건없는 대화 제안이나 윤석열정부의 담대한 구상 제안에도 귀를 닫은 김 위원장이 최근 전술핵 발사훈련 현장에서도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했으니 지금으로선 전술핵 재배치란 ‘극약 처방’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 현재 남한사회 일각의 시각인 것이다.
전문가로서 핵자강론을 펴고 있는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한미 정부는 북한 비핵화라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어 북한 핵위협의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미국 내 논의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대하는 비확산론자의 시각과 수용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시각이 공존한다”고 지적했다.
|
|
|
▲ 북한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지도 하에 전술핵 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2022.10.10./사진=뉴스1 |
그는 “북한이 설사 핵무기를 사용할까 또는 핵무기를 사용하면 곧 종말을 맞이할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이는 북한의 핵 보복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라며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듯이 모든 정치 지도자는 항상 합리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오판에 의해서도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센터장은 “한국정부는 한미 정상회담과 국가안보실장간 고위급회담 등을 통해 한국이 핵무장하면 설령 북한이 핵무기로 한국을 공격한다고 해도 미국이 북한과 핵전쟁을 벌일 이유가 사라지게 되어 미국 본토가 더욱 안전해진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구정부는 지금이라도 만약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한국은 생존과 안보를 위해 NPT를 탈퇴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유사 시 한국이 미국 확장억제력의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따라 미리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들여놓아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 센터장은 이번 북한의 전술핵 모의훈련 때 등장한 4500㎞ 비행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이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전술핵을 재배치할 가능성이 없고 적절하지도 않다는 시각이 많은데다, 만약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부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먼저 우리가 전술핵을 배치했을 때 한반도 비핵화 명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또 전술핵이 미국 본토든 괌에 있어도 북한에 대응이 가능하므로 굳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는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한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 등 미국 당국은 남한의 전술핵 재배치론과 관련해 “한국에 물으라”며 즉답을 피했다. 존 커비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1일(현지시간) 온라인 브리핑에서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에 “우리 목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의 비핵화”라며 “우리는 여전히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외교적 길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김정은과 조건없이 마주앉아 이를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말해 왔다”라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