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영국과 미국 경쟁 당국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에 대해 연달아 보류 결정을 내림에 따라 대한항공 경영진이 고심하게 됐다. 불허 결정이 아닌 만큼 사실상 조건부 승인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대한항공이 해당국과 주변국 항공사들에게 이권을 내줘야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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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공항에 주기돼 있다./사진=연합뉴스 |
1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영국 시장경쟁청(CMA)은 지난 14일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과 관련, 경쟁 제한 요소를 발견했다며 승인 보류 처분을 내렸다.
CMA는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런던-서울 간 승객은 크게 줄었지만 2019년 기준 14만3676명이 이용했다"며 "이 같은 수준의 수요는 향후 수년 내에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영국-한국 간 직항 화물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요 2개 업체인데, 합병으로 인해 충분한 경쟁 요소가 발생하지 않아 영국 기업들이 한국 착발 물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콜린 래프터리 CMA 선임 감독관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런던-서울 노선을 다니는 주요 항공사인데, 이와 같은 상태로 M&A를 승인할 경우 영국 소비자들과 기업들이 현재보다 더 많은 운임을 내거나 저품질 서비스를 받게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당국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하면 심층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CMA는 대한항공에 오는 21일까지 독과점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CMA는 오는 28일까지 대한항공이 제안한 방법을 수용할지, 거부하고 2단계 조사에 회부할지 결정하게 된다.
미국 내 독과점 주무 부처인 연방 법무부(DOJ) 역시 16일 이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간 기업 결합에 대해 추가 검토를 이어가기로 했다.
당초 DOJ는 75일 간 기업 결합 심사를 진행하겠다고 대한항공과 협의한 바 있지만 기한을 넘기게 됐다. 대한항공은 지난 8월 말 DOJ에 M&A에 관한 자료를 제출했던 만큼 이달 중순 경 심사가 무리 없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DOJ가 영국 CMA와 사실상 동일한 처분을 내린 건 두 항공사가 취항 중인 미주 노선이 상당하기 때문에 독과점 여부를 신중히 판단하고자 함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미주 노선은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인 2019년 대한항공 매출 중 29%를 차지한 주력 자산이다.
대한항공은 국내 신생 항공사 에어프레미아와 미국 메이저 항공사 델타항공·유나이티드항공 등도 미주 노선 운항편을 늘리면 해당 시장 내 경쟁 제한 요소가 생겨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DOJ가 당사와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 결합 심사 건에 대해 좀 더 시간을 두고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계 당국이 요구하는 자료 제공과 조사에 성실히 임해 왔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향후 심사 과정에도 적극 협조해 마무리를 잘 해내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자유 시장 내 경쟁을 중요시하는 국가인 만큼 합병 이후 독과점 우려가 작다고 판단하고 M&A를 승인하면 심사를 진행 중인 유럽 연합(EU)·일본·중국 등 주요국 심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항공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이 M&A를 허용하지 않으면 차질을 빚게 될 가능성도 크다.
DOJ는 양사 합병 이후 시장 경쟁성 제한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 본다는 입장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M&A 심사를 진행 중인 필수 신고국들이 승인을 내줄 것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대한항공이 해당국 항공사들에게 '당근책'을 내줘야 원활하게 행정 처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비근한 예로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은 인천-런던 노선 취항을 추진하고 있고, 대한항공은 미국 정부 승인 요건에 대비해 베트남 항공사에 미주 노선 공동 취항 요청을 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이 외국 항공사들에게 슬롯을 양보하고 공급 좌석 수를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전향적 모습을 보일 경우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나머지 경쟁 당국들도 줄줄이 기업 결합 승인을 내줄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총장은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국적 대표 항공사를 1개만 두는데, 장거리 국제선에서 경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과점 문제를 이유로 M&A 승인을 거부한 사례는 없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원칙적으로 영·미 경쟁 당국들이 승인 불허 조치를 내린 게 아닌 만큼 조건부 승인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황 교수는 "어차피 승인을 내줄텐데, 각국이 생색을 내서라도 자국 항공사들에게 이득을 안겨주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라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외항사들을 동원해서라도 당국들의 요구 조건을 맞춤으로써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을 마칠 것"이라고 부연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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