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 재건축 추진위 한남동 인근 집회 사실상 금지
법원, 은마 재건축 추진위 등에 제기한 시위금지 등 가처분 신청 대부분 인용
재판부 "개인 주거지 부근 집회·시위, 정당한 권리 행사 범위 넘어 사회적 상당성 결여 행위"
집회·시위의 자유 못지 않게 행복추구권 등 타인의 헌법상 권리도 보호 필요
[미디어펜=김태우 기자]법원이 시민들을 볼모로 불편을 야기하는 시위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1부는 지난 9일 현대건설과 한남동 주민 대표 등이 제기한 '시위금지 및 현수막 설치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등 일부 주민들의 한남동 주택가 시위가 사생활 보호와 평온을 저해한다고 보고 행위 대부분을 금지시켰다. 

법원은 주택가 인근 일반 시민들의 평온한 사생활이 자극적 표현과 무분별한 소음으로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이번 결정으로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반경 100m 이내에서 마이크와 확성기 등 음향증폭장치를 사용해 연설, 구호제창, 음원재생 등의 방법으로 소음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 

   
▲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앞서 이들은 정 회장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발언이나 이와 유사한 내용의 주장을 발송하거나 노동가요를 재생하는 등의 방법으로 소음을 발생시켜 주민들의 불편을 안긴 바 있다. 

이와 함께 정 회장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GTX 우회 관련 주장 및 이와 유사한 취지의 현수막, 유인물 등도 부착 또는 게시해서는 안 된다. 같은 내용이 기재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행위, 동일한 내용의 현수막 등이 부착된 차를 주·정차하거나 운행하는 행위 등도 금지된다. 

정 회장 자택 반경 250m 이내 및 은마아파트에서 근거 없는 비방성 문구 등이 기재된 현수막·유인물 등을 게시하고, 피켓 등을 들거나, 현수막 등이 부착된 차를 주·정차 및 운행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은마 재건축 추진위 측은 정 회장 자택 인근 및 은마아파트에 설치한 명예훼손성 표현 및 이와 유사한 내용이 담긴 현수막과 피켓, 입간판 등은 철거하고, 유사한 표현이 부착된 채 주·정차된 자동차도 수거해야 한다. 

이번 결정은 GTX-C 노선 변경의 협의 주체가 아닌 기업인, 개인을 모욕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집회·시위 및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행위라는 신청인 측 입장을 사법부가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표현의 자유 및 집회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지만, 이는 절대적 자유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명예와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없는 자체적 한계가 있다"며 "개인 또는 단체가 하고자 하는 표현행위가 아무런 제한 없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휴식권, 사생활의 자유 또는 평온이 고도로 보장될 필요가 있는 개인의 주거지 부근에서 집회 또는 시위를 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행사의 범위를 넘어 사회적 상당성을 결여한 행위라고 평가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추진위 측의 시위에 대해 "집회 또는 시위 및 표현의 자유의 정당한 권리행사의 범위를 넘어 개인의 인격권 등을 침해하고, 정 회장 및 인근 일반 시민들의 사생활의 자유 또는 평온을 침해하는 행위로 사회적 상당성을 결여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시위 장소와 관련해서도 "오로지 사적으로 거주하는 주거지는 이 사건 집회 및 시위의 목적과 연관성이 극히 낮고, 정 회장 자택 부근에서 시위를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개인의 거주지는 사생활의 자유 및 평온이 고도로 보장돼야 하는 장소라는 취지이다. 

추진위 측의 현수막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 정황의 뒷받침도 없이 악의적 표현을 사용해 비방하는 것으로, 정 회장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기 충분한 표현"으로 평가했다. 

◇집·시 자유 못지 않은 다수의 행복추구권 및 사생활 보장 '헌법상 권리' 
이번 법원의 결정은 소수의 주장 관철을 위해 이해당사자가 아닌 다수 시민들의 불편과 고통을 볼모로 주거지에서 진행되는 무분별한 시위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다.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개인 또는 단체가 시위를 통해 밝히고자 하는 표현 행위의 한계를 설정할 때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비례의 원칙'(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헌법상 권리인 집회·시위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하지만, 직접 이해당사자가 아닌 일반 시민의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 및 인격권 또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는 헌법상 권리라는 것이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역시 집회·시위의 권리와 공공 질서간 조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다만 일부 모호한 표현에 따른 제도적 공백으로 다수의 불편을 볼모로 한 민폐 시위에 대응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개인의 행복추구권 및 사생활의 평온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이번 법원 결정을 계기로 차제에 현행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속적 소음, 반복적 모욕, 악의적 표현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다수 일반 시민의 사생활 평온권, 건강권, 학습권, 인격권 등에 대한 보호 장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집시법 개정안은 21건으로 그중 절반은 소음, 모욕, 표현방식 등이 도를 넘는 집회 및 시위를 금지 또는 제한하는 의견을 담고 있다.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제안 설명과 전문위원 검토 및 보고까지 마친 개정안도 17건에 이르지만, 여야가 처리에 속도를 내지 못하며 장기간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막무가내 GTX-C 노선 변경 요구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는 정부가 안전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검증을 거친 국책사업 GTX-C 노선에 대해 뚜렷한 근거 없이 안전 문제를 거론하며, 비용 증가와 공기 지연이 불가피한 노선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은마아파트 전체 주민 중 극소수에 불과한 최대 370여 명의 시위 참여자들은 주장 관철을 위해 지난달 12일부터 한 달 가까이 주무부처인 국토부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을 제쳐 두고, 협의 주체가 아닌 기업인 자택 앞 시위를 벌여온 것. 

시도때도 없이 울려 퍼지는 고성과 비난, 선정적 현수막 문구 등으로 인근 시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는 물론 자녀 교육에도 악영향을 낳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 지역 빌라 관리사무소 한 직원은 "이들이 동네 주민들의 생활을 방해하면서 주민들의 민원이 수시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추진위 측의 시위를 두고 은마아파트 내부 주민들조차 비판을 숨기지 않는 분위기다. 

한 주민 커뮤니티에는 최근 "11월말까지 추진위와 국토부, 시공사가 추가 우회안을 내기로 합의하고, 기한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민 총회를 앞두고 돌연 노조 투쟁 같은 강경 시위를 주택가에서 벌이고 있다"며 "강경 시위가 은마를 위한 것인지, 다른 목적이 있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는 글이 게시됐다. 

'세계 최초 주거지 발파' 등 허위사실 유포 및 공금인 장기수선충당금의 시위비 유용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국토부는 서울시, 강남구청, 한국부동산원, 회계사 및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합동 조사반을 구성해 지난 7일 시위 주체인 은마 재건축 추진위 등에 대한 행정감사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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