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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
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A의 이야기다. 행정고시 합격 후 훌륭한 경력을 쌓았고 주변의 권유에 출마를 결심했다. 공직에 머물 때는 능력과 추진력을 인정받았지만 선거판에 뛰어들고 보니 백면서생임을 실감했다. 위기감이 몰려왔지만 출사표를 던지기 전 계획대로 첫 걸음을 떼었다. 평소 공직을 그만두고 선거에 나선 선배들을 길라잡이 삼아 우선 캠프부터 차렸다.
선거구의 성격상 정당 공천 다음으로 지역 유력 고교동문들의 지지가 절실하다는 판단에 따라 동문표 모으기에 나섰다. 자신이 졸업한 고교보다 여론 확장성이 앞서는 B고교 동문들을 공략해야 승산이 있다는 세론을 받아들였다. 캠프 사무장으로 B고교 출신 C를 영입했다. 경찰출신인 C는 지역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보여 자신의 빈틈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됐다. C역시 자신의 선거인 양 열심을 보였다. 치열한 선거전 끝에 A는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지역 정가는 A의 참패 이유에 다양한 댓글을 달았다. A의 본질적인 경쟁력, 선거자금 부족 등 으레 패인분석에 등장하는 클리셰가 반복됐다. 그런데 특이점은 사무장의 캐릭터가 패인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사무장의 열정이 지나쳐 자신이 후보인 양 지지자들을 선별했다는 줄거리다. 지류이든 탁류이든 상관없이 받아들여 주류를 만들어야 하는 선거판에서 사무장의 사나운 눈초리가 지지세 확장에 걸림돌이 됐다는 지적이다. C라는 포털을 통과하지 못하면 A에게 접할 수 없었다.
2,300년 쯤 전에 살았던 한비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모양이다. 한비자 제34편에는 그 유명한 ‘사나운 개’가 등장한다. 송나라 사람 가운데 술파는 사람이 있더란다. 되도 정확하고, 손님 대접도 잘했고 특히 술맛이 좋았다. 한비자의 이야기라면 도량형이 표준화되기 전이다. 그런데 되가 정확하다는 말은 술집 주인이 양심 가게를 운영했다는 칭송이다. 또 간판 깃발을 높이 세웠다고 하니 홍보에도 열심이었던 모양이다. 특히 술이 맛있었는데 팔리지 않아 쉬어버렸다.
고민에 빠진 술집 주인은 동네 현인(賢人)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현인은 술집 주인에게 먼저 술집을 지키는 개가 사나운 인지를 물었다. 주인은 어리둥절했다. 개가 사나운 것과 술이 팔리지 않는 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의아해하는 주인에게 현인이 설명했다. “혹 어린아이에게 돈을 주어 술을 사오라고 했을 때 개가 뛰어나와 물거나 하면 술이 쉴 때까지 팔리지 않는 법이네” 술집을 지키는 개가 사나워 손님을 내쫓으니 아무리 술맛이 좋아도 장사는 망하는 것이다.
한비자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夫國亦有狗(부국역유구)’으로 시작하는 후술에서 “나라에도 사나운 개가 있다”고 설파한다. 능력 있는 자가 좋은 방책을 가지고 군주를 깨우치려 해도 군주를 둘러싼 기득권자들이 사내운 개처럼 물어뜯는다는 첨언이다. 기득권자들이 사나운 개처럼 설칠수록 밝음을 차단당한 군주는 암군(暗君)이 될 수밖에 없음은 인지상정이다. 사나운 개에게 쫓긴 능력 있는 자들은 멀리 떠돌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중국의 정체성을 만들었다는 관중(管仲)의 이야기는 더욱 뼈아프다. 포숙과의 아름다운 우정으로 유명한 관중이지만 역사가 그를 기억하는 방법은 부국강병의 정치력을 통해서다. 형제간 권력 쟁탈전이 피를 불렀던 제나라를 안정시키고 환공을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覇者)로 등극시켰다. 그의 치국은 근대까지 부국강병의 전범(典範)이 됐다. 그가 처음 환공과 마주 앉았을 때 이야기다. 일종의 면접시험이다. 이 자리에서 환공의 첫 질문은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근심거리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관중은 망설임 없이 환공 주변에 기생하는 측근들의 폐해를 쥐에 비유한다. 약술하면 “사직에 구멍을 내고 기생하는 쥐새끼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지만 잡기는 어렵습니다. 불을 놓으면 사직의 목재가 타버릴 것이 걱정이고, 물을 부으면 벽이 무너질까 걱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환공 곁에 있는 측근들은 사직에 기생하는 쥐새끼와 같습니다” 환공은 집권 과정에서 반대 진영에 섰던 관중이 첫 대면에서 이렇게 당돌하게 나오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으리라.
그러나 관중은 말은 그치지 않았다. “쥐새끼 같은 측근들은 궁중에서 패거리를 지어 권력을 장악해 자신들의 비리가 군주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감추고 자기들을 위해서 일하는 자에게 이익을 주고 반대하면 손해를 줍니다. 자기들은 멋대로 법을 위반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 위세가 두려워 입을 다물게 됩니다” 결국 아첨하는 측근들이 쥐새끼처럼 둥지를 틀고 자신들의 이익을 사취하면 사나운 개가 되어 군주의 눈을 가린다는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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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관 조고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길 수 있었던 것은 황제 호해의 쾌락 우선주의뿐 아니라 치국에 대한 무관심도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
‘사나운 개’의 절정은 지록위마(指鹿爲馬)에서 보인다. 알려진 대로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진나라는 시황제가 죽자 얼마 못가 망한다. 역사는 환관 조고가 망국의 주범이라고 기술한다. 조고는 시황제의 순행을 따르던 중 시황제가 사구에서 사망하는 격변이 일어나자 주저하는 승상 이사의 틈을 노려 권력을 찬탈했다. 적장자 부소가 아닌 호해를 옹립한 조고는 자신의 정적들을 말살하고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손에 쥐었다. 그 무소불위의 권력을 공고화하는 과정이 지록위마의 고사를 낳았다.
조고는 황제 호해와 대신들이 늘어선 자리에 사슴 한 마리를 끌고 왔다. 그리고 호해에게 황제를 위해 좋은 말을 구했다고 너스레를 떤다. 조고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계속 우기니 호해는 난처했다. 호해는 옆에 서있는 대신들에게 “저 것이 사슴인가, 말인가”를 물었다. 일부는 말이라고 대답했고, 나머지는 사슴이라고 말했다. 물론 사슴이라고 답한 대신들은 모두 조고의 손에 죽었다. 이후 조고는 이사를 모함해 죽이고 승상이 됐으며 패역한 권력놀이를 일삼아 진나라를 망하게 했다. 사나운 개가 권력을 잡더니 나라를 망친 것이다.
고사를 오늘 떠올리는 이유는 2022년 말 현안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함이다. 눈에 밟히는 건 관중이 비유한 ‘사직의 쥐새끼’ 대목이다. 관중의 비유를 풀어낸 많은 서책들이 마지막을 ‘人主不覺(인주부각)’이라고 마무리한다. “군주는 모르고 있다”는 뜻인데 의문이 가시 질 않는다. 과연 환공이 자신의 측근들이 권력을 쥐고 흔든다는 소리를 못 들었을까? 과연 호해가 조고가 가리킨 사슴을 말이라고 믿었을까?
아닐 것이다. 듣고도 모른 채하고,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척 했을 것이다. 호해는 쾌락만 보장이 되면 치국과 안민은 상관없었다. 환공은 자신의 집권을 도운 권신들이 자신의 권력을 탐하지만 않으면 눈감을 수 있었다. 이런 사례는 중국의 고사나 거대 담론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조직의 ‘사나운 개’는 더욱 고약하고 치명적이다. 분명한 건 권력 주변에 포진한 사나운 개들이 조직을 끌고 갈 엘리트의 등용을 막으면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사실이다.
사나운 개가 요즘 용산에 출몰한다고 하나 우리 주변도 살펴봐야 하는 연말이다.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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