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류준현 경제부 기자 |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2022년 임인년(壬寅年)은 정권 교체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금융권 CEO 인사개편으로 떠들썩했다. 한국산업은행이 교수이자 윤석열 정부 대선캠프 인사였던 강석훈 정책특보를 회장으로 발탁했고, 농협금융지주도 경제관료이자 캠프인사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했다.
한편으로 낙하산 인사가 우려되던 한국수출입은행과 Sh수협은행이 내부출신 인사인 윤희성(전 혁신성장금융본부장), 강신숙(전 수협중앙회 금융담당 부대표)을 새 수장으로 맞이했고, IBK기업은행도 우여곡절 끝에 내부출신 인사인 김성태 전무가 차기 행장으로 내정됐다.
결과만 놓고 볼 때 우려보다 내부출신들이 득세하며 향간에 떠돌던 관치인사 논란을 종식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들 은행은 당초 인선 과정에서 △경제관료 출신 △대형 금융권 고위 임원 경력 △학연 등을 내세운 인사들이 유력 후보로 거론돼 노조를 비롯한 내부 직원들의 반발을 샀다.
일각에서는 전방위적인 낙하산 논란으로 언론을 비롯한 금융권의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당국이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는 평가를 제기한다. 아울러 대통령실 내부에서 모피아(관료출신 금융마피아)에 대한 비판여론으로 인사 추진동력이 떨어지자, 정부가 인사 지침을 급선회했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내부인사 기용에도 업계의 반응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특히 정부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당국 수장들의 발언은 관치 논란을 증폭시킨다. 앞서 차기 기은 행장에 정은보 전 금감원장 유력설이 떠돌게 된 것도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금융위 제청이기 때문에 복수 후보자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다. 후보자 중 한 명인 것은 맞다"면서도 "일률적으로 관료 출신이 나쁘다고 볼 것이 아니라 후보자 개인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까닭이다.
'후보자 중 한 명'이라는 객관적 사실만으로도 논란 거리인데, '무조건 관치가 나쁜 게 아니'라는 점을 호소해 불필요한 갈등만 키운 것이다.
|
|
|
▲ BNK부산은행 노조와 시민단체는 지난 29일 부산 남구 부산은행 본점 1층 로비에서 '낙하산반대 결의대회'를 열고 외부인사 반대투쟁에 나섰다./사진=금융노조 부산은행지부 제공 |
이복현 금감원장도 민간 금융권 회장 인사에 거침없는 입담을 선보이며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3연임 도전을 앞두고 용퇴를 결정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스럽다"며 치켜세웠다.
반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 대해서는 "손 회장이 (제제안에 대해)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발언한 데 이어, 손 회장이 대법원 징계취소소송에서 승소했음에도 "여러 번에 걸친 심도 있는 논의 끝에 사실상 만장일치로 결론 난 징계"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그 이면에 차기 회장 후보군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기업은행장을 지낸 조준희 전 YTN 사장,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우리금융은 지난해 완전 민영화로 전환했음에도 관치인사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BNK금융지주도 이 원장의 사외이사 검증 책임 발언 이후 떠들썩하다. 이 원장은 지난 21일 "외부 인사 영입은 지역에 한정된 게 아니라 비전 있는 분을 모시겠다는 의도로 안다"며 "지금 후보 중에 오래된 인사이거나, 정치적 편향성이 있거나, 과거 다른 금융기관에서 문제를 일으켜 논란이 됐던 인사가 포함돼 있다면 사외이사가 알아서 걸러주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또 "개별 지주사의 사정이 다 다르고, 감독당국은 개입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특정 학교나 특정 계열 간의 다툼이 있어 (조직을) 저해한다면, 적어도 그런 일을 방지할 수 있는 CEO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극적인 의미의 기준을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BNK금융 이사회가 열리는 하루 전날의 발언이었다. 인사외풍을 막기 위해 자체 후계자 제도를 만들었던 이사회는 감독기관장의 발언 한마디와 당국의 현장검사에 기존 규정을 폐기하고 기조를 급선회했다.
이 원장의 발언대로라면 CEO 1차 후보군 6명 중 내부인사인 △안감찬 현 부산은행장 △이두호 BNK캐피탈 대표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 △손교덕 전 경남은행장이 모두 배제되고, 외부인사인 김윤모 현 노틱인베스트먼트 부회장,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만 남게 된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5년 전 '갑툭튀(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논란을 일으킨 김지완 전 회장의 선출과정과 오마주된다는 점에서, 노조는 "차라리 금감원장이 누구를 지지한다고 공개발언을 했으면 한다"고도 얘기하고 있다.
무소불위 감독기관장의 시원하고 거침 없는 입담은 언론에게 좋은 '기삿거리'가 되면서, 한때 검사로서의 자신감도 엿볼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금융권을 주무르는 감독기관장의 발언이 업계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엘리트 경제관료를 비롯한 화려한 경력의 외부인사를 무조건 배척할 순 없을 것이다. 공개경쟁으로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외부의 우수한 피를 수혈해 조직에 혁신 신바람을 몰고 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왜 내부 인사를 선호할까. 가장 손꼽히는 요인으로는 조직문화 수용력, 전문성, 충성도 등이 꼽힌다. 대표적으로 기은 노조가 내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4%가 '내부 출신 행장'을 원했다는 발표를 냈고, 차기 행장이 갖춰야 할 자질로 '전문성'과 '충성도'를 꼽았다. 반면 외부 출신은 '조직에 대한 이해 부족’과 '친정부 정책 추진'을 이유로 기피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외부 관료 출신들이나 정치권 인사가 국책은행장이나 금융기관장으로 내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취임 초 노조와의 갈등을 시작으로, 각 기관만의 고유한 전통과 조직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데 애로가 많은 편"이라며 "대통령에게 행장 임명권이 있는 만큼 관치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공적 책임감과 전문성을 요하는 자리인 만큼 관련 업무에 정통한 인사를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젠가부터 금융권에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 환경에만 치우쳐 'ESG경영을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노사가 화합하지 못하는 '불투명한 지배구조' 속에서 ESG경영은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 정권 교체기마다 언급되는 '우리가 남이가' 식의 끼리끼리 인사문화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다.
금융당국도 고금리·고환율·고물가로 언급되는 3고 위기 속에 인사개입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불필요한 발언을 자제하고,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혹에는 적극 해명해 금융인들이 시장 안정화에 주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