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혐의 입증 어려워…수사 장기화 경향↑
불확실성 줄이고 실효성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사망재해가 줄어들지 않고 혼선만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원청에 대한 과잉 처벌과 불명확한 책임 범위 등이 문제라는 비판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신속한 법률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5일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및 기소 사건을 통해 본 법률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표해 이 같이 밝혔다. 해당 법은 지난해 1월 27일 시행됐다.

경총은 “중처법 시행 후 정부가 사고발생 기업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으나, 현재까지는 법 위반 입건 및 기소 실적이 많지 않고, 법률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달리 범죄혐의 입증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정의, 경영책임자 개념 및 대상, 안전보건관계법령 등 경영책임자 의무내용, 원청의 책임범위(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 등이 불명확하다는 비판이다.

이어 경총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노동청·검찰)이 특정대상만을 경영책임자(피의자)로 인정하고 있고, 안전역량이 부족한 중소규모 이하 사업장은 여전히 법 준수 이행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꼬집었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사망재해가 줄어들지 않고 혼선만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방의 한 건설 현장 전경.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범죄 혐의 입증 어려워…수사 장기화 경향↑

법률의 불명확성 등으로 인해 수사기관이 범죄혐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처법 수사가 장기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12월 말 기준 수사기관(노동청·검찰)이 경영책임자를 중처법 위반으로 기소된 11건의 사건을 처리하는데 걸린 기간은 평균 8개월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업대표’와 ‘이에 준하는 자’ 중 누가 경영책임자로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의무를 이행했는지 확인해야 해 경영책임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법률의 명확하지 않아 경영책임자의 관리책임 위반을 찾고 고의성 여부까지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과 본사 압수수색, 대표이사 입건, 상당한 범위의 관련자 소환조사 진행 등 수사범위가 넓고, 기존 사건의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규사건이 계속 발생·누적되고 있는 점도 수사의 어려운 점으로 꼽힌다.

사고 발생 시 노동청과 경찰이 대표이사를 대상으로 중처법 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죄 위반혐의를 조사하고 송치하는 등 중복수사 만연하고, 이것이 수사기관 간 경쟁으로 번지는 점도 해당 법안의 폐해로 꼽힌다.

◇기업규모 작을수록 처벌 면하기 어려워

검찰이 중처법 위반으로 기소한 경영책임자의 기업규모는 대부분 중소기업 및 중소건설사였던 점도 문제다. 지난 해 12월 말 기준 검찰이 기소한 11건 중 1건(중견기업)을 제외한 10건은 모두 중소기업과 중소건설현장이었다.

중처법이 시행 된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인적·재정적 여력이 부족해 법적 의무를 완벽히 준수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사고발생 시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청근로자(대표) 사망에 대해 원청의 경영책임자만 기소되고 과도한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점도 문제다. 또 검찰 내부 및 법무부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중처법 위헌논란이 일고 있어, 향후 법원판단도 예측불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까지의 기소 사례만 봤을 때, 중처법 위반과 사고와의 인과관계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노동청의 수사역량 부족으로 피의자 권리를 침해하거나, 과도한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등 강압적인 수사행태 사례도 발생해 법률 개편이 시급한 상황이다.

◇법률 불확실성 줄이고 실효성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이에 경총은 중처법 시행에 따른 현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중대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법률 개정(보완입법)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는 중처법을 산업안전보건법과 일원화시키고, 이를 실현하기 어렵다면 기업인들에게 가장 부담을 주는 형사처벌 규정의 삭제를 최우선적으로 검토·추진해야한다는 의견이다.

또한 논란이 되는 중처법 이행주체 및 의무내용(원청의 책임범위 포함)을 명확히 하고, 내년부터 법이 적용되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법 적용 시기를 추가로 유예해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중처법 시행 1년이 됐음에도 산업현장의 사망재해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은 형벌만능주의 입법의 폐단”이라며 “중대재해를 효과적으로 감소시키고, 법 적용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중처법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처벌만 강조하는 법률체계로는 산재예방이라는 근본적 목적 달성에 한계가 있는 만큼, 산업현장의 안전역량을 지속적으로 육성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지원법 제정을 정부가 적극 검토 ·추진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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