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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우 기자 |
결국 정치 이슈가 되고 말았던 세월호의 전철을 메르스(MERS) 사태가 밟게 돼버렸다. 4일 밤 박원순 서울시장의 ‘저격 기자회견’은 그 신호탄으로 기록될 것이다.
세월호라고 처음부터 정치 이슈였던 건 아니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마음 아파했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다 ‘정부 vs 반(反)정부’의 첨예한 논쟁이 시작된 것은 사건 3일차, 어느 민간 잠수부가 종편 채널과 생방송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구조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한 바로 그 시점부터였다.
결국 해당 채널의 보도국장이 사과방송까지 해야 했던 저 인터뷰를 기점으로 세월호의 헬 게이트(hell gate)는 열리고 말았다. 추측과 음모론, 맹신과 불신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더니 결국 정치적 견해에 따라 온 나라가 좌우로 정렬된 것이다. ‘사실’이 설 자리엔 ‘논쟁’만 들어차 버렸다. 남은 건 상처뿐이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지옥문이 열리려 한다.
간밤의 도적처럼 찾아온 박원순 서울시장의 4일 밤 기자회견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골간으로 하고 있다. 첫 번째는 6월 1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시 소재 35번 환자가 5월 30일 1565명이 참석한 행사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사실이다. 박 시장은 “워낙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해 금일 저녁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다음 논조는 정부 비난으로 이어졌다. 보건복지부에 대해서는 “이런 엄중한 상황에 대해 정보 공유를 받지 못했다”고 얘기했고, 질병관리본부에 대해서도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현직 서울시장이 중앙정부에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박 시장은 마치 보란 듯 “서울시는 (앞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박 시장의 한밤 기자회견은 그가 저격한 사람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특히 35번 환자이자 의사인 박모 씨는 5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사로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행동했는데 박 시장의 정치적 쇼와 브리핑으로 내 인격이 훼손되고 너무 상처받았다”고 밝혔다.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서 자신을 숙주 취급한 셈이니 당혹스런 심정도 오죽 할까. 심지어 이 환자에 대한 서울시의 사실 확인이야말로 미비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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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정치 이슈가 되고 말았던 세월호의 전철을 메르스(MERS) 사태가 밟게 돼버렸다. 4일 밤 박원순 서울시장의 ‘저격 기자회견’은 그 신호탄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
진짜 심각한 문제는 지금부터다. 갈등을 목격한 인간의 심리는 둘 중 하나의 입장을 채택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특히 이번 사태의 경우 야당 출신의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부와 대립 구도를 만들었으니 박 시장을 지지하는 여론과 정부를 두둔하는 입장이 좌우로 갈려 충돌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 돼버렸다. 변종 바이러스를 두고도 좌우 대립을 해야 하나? 메르스 파문이 누군가에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편 가르기가 심화되면 그때부턴 어떠한 객관적 담론도 불가능해진다. 메르스 사태에 있어서도 이제 어떻게든 정부를 비판하면 ‘박원순 편’이 되고, 서울시를 탓하면 ‘일베충’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비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 누구도 과거로부터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언론은 ‘정부 vs 서울시’ 프레임으로 재단돼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류의 싸움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박원순이라는 한 개인이 이와 같은 상황에 익숙하리라는 것은 예측 가능하지만 그는 지금 참여연대의 창립자도 아름다운재단의 상임이사도 아닌 서울시장이다. 꼭 이래야만 했을까. 그의 승부사 기질이 이 나라에 남길 상처가 결코 메르스라는 무서운 바이러스보다 덜 위독하지 않을 것 같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