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언어로 말하자면 정국을 주도하는 여당의 주류세력쯤 되겠다. 광장의 언어로 번역하면 ‘윤핵관’이다. 윤석렬 대통령을 보위하며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설계 중이다. 알려진 대로 이들 윤핵관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나서려는 나경원 전 의원을 주저앉혔다. 윤핵관 중에서도 핵심으로 알려진 몇몇 인사가 깃발을 올리자 40 여명의 초선의원들이 서명된 연판장까지 돌리며 나 전 의원을 막아섰다. 여기에 대통령실마저 합세하는 모양새니 지킬 게 많은 나 전 의원이 손을 들었다.

국민은 어리둥절하다. 특히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보수층은 더욱 그렇다. 어려운 시절, 국회에서 원내대표로서 강경 투쟁을 주도했던 ‘빠루 여전사’를 기억하기에 현 상황을 해석하기 힘들다. 나 전 의원이 한사코 자신은 ‘친윤’이며 윤석렬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한다기에 유승민 전 의원이나 이준석 전 대표와는 다른 체질로 받아들이는 보수층이 많은 것도 이유다. 이들의 뇌리에는 윤핵관이라 불리는 주류세력이 마치 차기 당 대표를 내정한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여론조사 결과 경쟁력이 입증된 나 전 의원을 압박했다는 느낌이 박혀있다. 하여튼 나 전 의원은 후보등록도 못한 채 퇴장당했다. 

나경원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 이상기류가 나타났다. 지난 27일 발표된 나 전 의원을 배제한 리얼미터 여론조사가 난류의 텍스트다. 전국 성인 남녀 1천9명(국민의힘 지지층 422명 포함)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당대표 선호도를 물은 결과 여권 주류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김기현 의원의 지지율은 직전 여론조사(1월 16~17일)보다 0.3%p 하락했다. 물론 40.0%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지만 도드라진 결과는 안철수 의원의 도약이다. 직전 여론조사에서 17.2%의 지지율로 3위를 기록했으나 25.3%를 차지했던 나 전 의원이 빠지자 지지율이 16.7%p 증가하며 33.9%를 기록했다. 1위인 김기현 의원과 격차를 오차범위로 좁혔다. (27일 발표된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이다) 

   
▲ “국민의힘은 스스로 국민의힘 강령을 위반한 게 아닐까, 국민의힘은 과연 보수의 가치를 DNA에 새긴 보수정당일까”를. 사진은 지난 25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


여론조사 발표 이후 다시 한번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보수층을 의아하게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오른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는 왼손’이었던 김기현 의원이 “나 전 의원의 전당대회 불출마를 단 한 번도 압박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며 나 전 원내대표에게 손을 내밀자 등을 돌리는 지지자들이 출현했다. 보수의 가치를 저버리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도 급하기는 마찬가지다. 나 전 의원의 표가 대세를 가를 황금사과로 드러나자 수도권을 매개로 연대를 추진하고 나섰다. 나 전 의원에게 위로 메시지를 보냈다고 공개하더니 만남을 공개적으로 호소 중이다. 역시 ‘찐보수’에게 이 같은 행동은 탐탁치 않다. 

정통 보수를 자부하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무리 정치가 승리를 지선(至善)으로 추구한다지만 나 전 의원을 밀어내는 과정을 보면 정도를 벗어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주의자에게는 “불변의 도덕적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는 정통 보수층은 국민의힘 주류의 저급한 정치행위에 실망감을 숨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급한 정치가 오랜 기간 쌓아온 보수의 가치를 훼파한다는 점에서 정당의 이해관계를 넘어 정치 신념이 부정당하는 낭패감을 지울 수 없어 한숨짓는다.

“보수주의를 창시했다”고 까지 추앙받는 보수주의의 그루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자는 소위 규범이라는 원칙을 믿는다”고 선언했다. 힘이 있어도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원칙에 따라 스스로를 억제하는게 보수주의자라고 설명한다. 이어 “보수주의자는 관습, 널리 오랫동안 합의된 지혜, 계속성을 중시한다”며 행동강령으로 천명했다. 

보수정당을 표방한 국민의힘도 당 강령에서 버크의 이념을 계수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보유한 10개의 훌륭한 강령 가운데 두 개 항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03. 우리는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가 주어질 때 스스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08. 우리는 정치가 정직하고 겸손해야 하며 모든 권력은 분립되고 견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야말로 보수적 가치를 아름다운 언어로 규정한 명문이자 보수주의자의 행동강령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처럼 아름다운 보수적 가치가 이번 나경원 사태로 사문화됐다는 의문에 누구도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보수적 가치를 진정으로 추구하는 보수층은 자문한다. “국민의힘은 스스로 국민의힘 강령을 위반한 게 아닐까, 국민의힘은 과연 보수의 가치를 DNA에 새긴 보수정당일까”를.

미디어펜= 김진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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