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지난 3년 간 코로나 시국으로 대대적인 전환을 맞은 기업들이 고금리, 소비 심리 위축 등 경기침체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중대재해법과 공정경제(기업규제) 3법이 통과하고, 최저임금 인상 및 법정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기업 생태계에 다소 부정적 영향이 있었는데, 최근 러시아 전쟁과 금리인상 및 원자재값 상승 등 대외적 환경 악화로 최악의 상황이 우려된다.   

문제는 경제성장률 침체가 예상되는 등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은 순간에도 정치권에서는 기업 생태계 조성에 관심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도 여전히 노란봉투법 강행이나 횡재세 논란, 사기업 인사 관여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위기 상황에서도 한국 경제를 이끈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수출 부문에서 적자를 보고 있어 기업들도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건설의 부도는 건설업계의 연쇄부도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도 정치권에서는 우리 기업의 생존과 경쟁력 확보보다 세수 확보나 인기에 관심이 큰 모양이다. 최근 논란이 된 정유업계를 겨냥한 횡재세의 경우, 제조업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유업계를 비롯해 반도체, 철강 등 장치산업은 공급과 수요의 경제 논리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이클(cycle) 산업이다. 물론 뜻하지 않게 큰 수익을 얻을 때도 있지만, 반대로 최악의 시기를 견뎌야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최근 사례로 반도체 산업을 보자. 삼성전자는 지난해 1~3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을 만큼 호황기를 누렸지만, 4분기부터 시황이 꺾이기 시작해 올해 1분기는 적자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철강업계도 최근 2~3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을 만큼 호황기를 누렸지만, 보릿고개라 불릴 만큼 만만치 않은 혹한기를 견뎌야 하는 시기도 있었다. 이러한 생태 사이클은 제조업이면 대부분 겪기 마련인 만큼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게 제조업 경영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제조업의 경우 간단하게 수요가 많으면 공급을 늘리고 반대의 경우 생산을 줄이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상 제조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장가동률과 생산량을 유지하는 것이다. 즉 호황이든 불황이든 생산량은 어떻게든 일정하게 가져간다는 뜻이다. 다만 제품을 팔아 얻는 이득의 차이, 즉 영업이익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실제 생산을 줄이는 것은 고정비용 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제조공정 점검이나 수리 등을 통한 감산을 하지만, 연간 생산량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1분기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여겨지는 것도 공장가동률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8인치 파운드리 반도체 공정의 1분기 가동률은 삼성전자와 DB하이텍은 70~80%, SK하이닉스는 절반에 가깝게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불황 대비책의 일환으로 철강업계의 경우 가공서비스센터(유통)를 운영하는데, 1~2차 유통업체들이 호황과 불황 사이에서 버퍼링 역할을 한다. 제조업체들은 불황 때 유통업체에 물량을 떠넘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공급이 부족할 때는 유통업체에 안정적 물량을 공급하며 상부상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산업 생태계 조성은 사이클 산업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정유업계가 횡재세 논란에 억울한 것은 다른 제조업과 달리 이러한 버퍼링 역할을 할 장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하다못해 다른 산업은 계열사나 하청 업체를 통해 재고를 쌓아두기라도 하지만, 정유업계는 재고 조정이 어렵다. 이런 이유로 정유업계는 완충 장치 차원에서 하공정인 석유화학 산업에 큰 투자를 한 바 있다. 

정유업계 출입기자를 처음 맡았을 당시 원유가격이 내려갈 때 재고를 많이 쌓아두면 되지 않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사실상 원유가격의 향방을 예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실제 3년 전만 해도 원유가격은 배럴당 20달러 대로 떨어졌었고, 정유업계는 조 단위의 적자를 기록했었다. 

원유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고 뜻밖의 에너지 부족 사태로 실적이 좋았다고 해서 세금을 더 거둔다면 어려울 때 보조금을 주는 지원책도 함께 마련하는 것이 올바른 조치다. 

사실 횡재세는 주식에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수익을 낼 땐 세금으로 뺏어가고 잃을 땐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주식이 도박과 중독성을 갖고 있는 묻지마 투자에 가깝다면, 기업의 투자는 미래성장과 내실을 기하기 위한 성장동력으로 봐야 한다. 그만큼 횡재세에 대한 정당성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만에 하나라도 도입한다면 모든 산업에 공평하게 적용하고, 뜻하지 않은 부정기적 손실을 입은 경우 이를 만회해 줄 지원책도 마련도 병행돼야 한다.  


기업이 정치와 엮인 사례는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KT는 대표 공개 모집을 공고한 바 있다. 응모 자격은 △경영·경제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경력을 가진 분 △기업경영 경험이 있으신 분 △최고 경영자로서 자질과 능력을 갖춘 분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분으로 소개됐다. 나이, 학력, 전공, 성별 등에 의한 제한은 없다고 한다.

전문 경영인 공개모집의 모양새가 나쁘지만은 않지만, 정치권의 외풍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실상 KT 내부에서는 구현모 대표의 연임을 확정적으로 바라봤는데 갑작스런 공개모집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디지털플랫폼으로의 급박한 전환 속에서 그동안 내실을 닦아온 KT가 현 기조와 실적을 이어갈 새 대표를 외부에서 구할 수 있을 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이번 대표 공개 모집은 KT만의 문제가 아니다. 포스코도 KT 상황을 주시 중이다. 공기업이 민영화된 대표적 사례로 항상 비견돼 온 두 기업인만큼, 이번 KT 대표 선임은 포스코에서도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포스코 회장은 내부인의 몫이었던 만큼, 공개 모집은 상상하기 어렵다. 업계 1위의 글로벌 기업에서 다른 관계인을 회장 자리에 앉히는 것도 우스운 꼴이기 때문이다.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는 말이 있다.

기업가는 정치인에게 정치 자금을 제공하고, 정치인은 기업가에게 여러 가지 특혜를 베풀어 부당한 이익을 얻게 해 주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과거 이 말이 부정적 의미로 사용됐다면 앞으로는 좀 건실한 방향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정치권에서 경제를 위해 기업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기브 앤 테이크’ 방식을 사용하면 된다. 기업 생태계 조성이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정부와 위정자들의 몫이다. 

[미디어펜=문수호 기자] ▶다른기사보기